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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로 성매매특별법 시행 8년… 성매매女-매수男-단속경찰 목소리로 들어본 특별법 효과와 한계

입력 | 2012-09-22 03:00:00


‘성매매특별법’ 시행 8년째… 현장 목소리 들어보니

《 23일은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8년 되는 날이다.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근절과 성매매 피해 여성의 인권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

정부와 여성단체는 성매매를 방지하고 선도하는 목적의 윤락행위방지법보다 강한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오늘 성매매특별법의 실효성 논란은 계속된다.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았다.

오히려 도심과 주택가로 실핏줄처럼 번졌다. 더 음성화된 성매매 업소에서 여성의 인권은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이러니 이 법을 폐지하자는 주장과 그나마 성매매 산업을 억제하려면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는 어떨까? 성을 팔고 사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그들을 쫓는 경찰의 목소리를 듣고 성매매특별법의 효과와 한계를 진단한다. 》
성매매특별법이 8년 동안 강력히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말 한마디.

“마음에 드는 아가씨 있나 보고 가세요.”

18일 오후 11시경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 성매매업소 집결지인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의 어두컴컴한 골목에 기자가 들어서자 중년 여성들이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업소마다 커튼을 쳐 홍등가를 상징하는 붉은 불빛이 외부에 보이지 않을 뿐 영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술 취한 남성이 업소 인근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더니 골목에 서서 마담과 흥정했다. 순찰 중인 경찰은 이 모습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갔다. 커튼을 치고 영업하면 경찰도 그냥 넘어간다고 했다. 흥정에 성공한 마담은 커튼을 열고 이 남성에게 붉은 조명 아래 앉아 있는 성매매 여성들을 보여줬다.

○ 집창촌 여성들 ‘불만’ 왜?

2000년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 서장이 성매매 업소를 뿌리 뽑겠다며 전쟁을 벌인 곳. 2004년 9월 23일 성매매 근절과 성매매 여성 인권보호를 위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자 경찰의 단속이 한층 강화된 곳. 이후 불어온 서울시 재개발 바람 속에도 텍사스촌은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150여 곳에서 여성 400∼500명이 일하고 있다.

텍사스촌의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우리 삶이 더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다. 1997년 일을 시작했다는 이모 씨(36·여)는 “처음에는 창녀가 됐단 생각에 자괴감이 심했지만 몇 년 지나자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으로 홀어머니를 부양하는데 스스로 자책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8년 동안 내 생활에는 변화가 없는데 법 때문에 나쁜 ×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법 시행 전에는 경찰도 성매매 업소가 몇 가지 중대 범죄만 저지르지 않으면 심하게 단속하지 않았다. 인신매매, 미성년자 고용 감금 등이다. 여기에 월급을 잘 주고 성병 관리만 잘하면 의례적인 단속 이외의 ‘철퇴’를 휘두르지는 않았다. 법이 시행된 2004년 이후 이런 ‘규칙’은 확 바뀌었다.

이 씨는 “집창촌에 남은 우리는 닭장 속의 닭처럼, 경찰이 실적이 필요할 때 한 마리씩 잡혀가는 신세가 됐다”며 “경찰 단속도 두려워하지 않는 손님만 오다 보니 손님의 질도 점점 나빠져 일하기 더 힘들다”고 말했다. 포주 A 씨는 “여기 온 손님들이 돈을 주고 성욕을 풀고 가니 성범죄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며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애꿎은 피해자가 줄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때 이곳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김모 씨(33·여)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으로는 이곳을 벗어나도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며 “손가락질 받아도 큰돈이 꼭 필요해서 일하는 우리에게 쥐꼬리만 한 돈밖에 못 받을 다른 일을 하라고 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화를 냈다. 숨기고 싶은 직업이지만 큰돈을 벌 수 있으니 ‘좀 놔두라’는 하소연으로 들렸다.

○ 집창촌 떠난 여성은 ‘불안’

현재 텍사스촌에 남은 여성들은 3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김 씨는 “젊은 애들은 경찰 단속을 피하고 수입도 넉넉한 다른 종류의 성매매 업소로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손님은 줄어들고 단속은 심한 이곳을 떠난 여성들은 주택가나 도심의 안마방이나 휴게텔 오피스텔 성매매로 옮겨갔다.

2008년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일을 시작한 김연희(가명·24·여) 씨는 수입이 줄어들자 곧바로 휴게텔, 안마방으로 일터를 옮겼다. 이런 곳의 성매매는 단속을 피해 더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단속 위험은 줄었지만 텍사스촌처럼 여성을 지키는 업소 직원이 배치되지 않다 보니 성매수 남성의 폭력에 노출될 위험은 훨씬 커졌다. 김 씨는 “2010년 10월 성구매 남성의 가학적인 성행위 때문에 큰 상처를 입고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가출 청소년과 대학생이 많이 유입된 인터넷 조건만남이나 오피스텔 성매매 등 비업소형 성매매 여성은 폭력에 더 노출돼 있다. 일대일로 성매수 남성을 상대하는 조건만남 성매매 여성들은 돈을 받지 못하거나 모텔에서 몸이 강제로 묶인 채 폭행당하고 성관계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는 이미나(가명·22) 씨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업소에서는 업주나 손님의 부당한 대우에 대응할 수 있지만 홀로 일하는 오피스텔은 불가능하다”며 “업주가 ‘손님을 몰아주겠다’며 강제로 성폭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성매매가 권리냐, 아니냐

성매매 여성이 자신들을 ‘성노동자’로 불러주길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성을 판매할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도 생겨났다. 김연희 씨는 “다른 직업과 똑같은 노동이라고 생각하니 떳떳해졌다”고 말했다. 이들이 소속된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持志)’는 “성매매특별법이 우리를 범죄자나 피해자로 취급해 오히려 현장에서 폭력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다”며 “성 판매를 합법화하고 우리를 노동자로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성 판매 합법화는 성매매업 종사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류 여성단체는 성매매 여성들이 범죄자로 낙인찍혀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성매매 자체는 ‘사회악’이라고 선을 그었다. 성매매특별법 존치를 주장하는 단체 관계자는 “성노동자 운운하는 성매매 여성은 소수일 뿐 대부분 여성들은 남성 우월적인 구조 속에서 성폭력에 가까운 착취를 당하고 있다”며 “성을 사고파는 범죄 행위는 절대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적반하장 男 “카드 긁는 바람에 재수없게 걸렸다”
“쉽게 돈 벌려는 그녀들이 더 문제”

대구의 한 보호관찰소. 남자 40여 명이 한결같이 억울한 표정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다. 19세부터 67세까지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모두 성매수를 했다가 단속에 적발돼 재범방지 교육 프로그램 ‘존스쿨’에 참여하는 이들이다.

남성들 앞으로 20대 후반의 여성 한 명이 나왔다. 성매매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강사 자격으로 초빙된 전직 성매매 여성이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 여성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던 한 남성이 질문했다.

○ “내가 걸린 건 너 때문”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그렇지 성매매를 해요? 편하게 돈 벌려는 생각을 고쳐야 돼….”

훈계에 가까운 질문들이 쏟아지자 여성은 말을 멈췄다. 정박은자 대구여성인권센터 팀장은 당시 상황을 전하며 “성매수한 자기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성매매 여성만 부도덕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전형적인 성매수 남성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성들이 성매수를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보지 않고 ‘남의 탓’만 한다는 점을 꼽는다.

성매수로 적발된 남성 대부분은 ‘하필 나만 재수 없이’ 걸렸다고 불평한다. 단속을 피해 성매수한 남성들도 많은데 자신만 ‘재수 없게’ 걸렸다는 뜻이다. 실제로 존스쿨 수강생 40.6%는 성구매를 멈추지 않는 이유로 ‘단속 나올지가 불확실하다’는 점을 꼽았다. 정재훈 전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신용카드를 쓰는 바람에 걸렸다’며 후회하는 게 보통이고 성매수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남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집단의 압박도 성구매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남성 여럿이 모인 술자리가 관행처럼 성매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직장인 A 씨(32)는 “개인적으론 낯선 여성과 성관계하는 걸 즐기지 않지만 막상 뒤로 빼면 ‘용기와 동료애 없는 남자’로 낙인찍힐까 봐 어쩔 수 없이 따른다”고 말했다.

○ 비뚤어진 ‘욕구 해소론’

성욕을 해소할 통로가 성매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하는 남성도 있다. 여자친구가 없다는 미혼 취업준비생 B 씨(29)는 “여성과 성관계에 이르는 과정이 어려워 종종 업소를 찾는다”고 털어놨다. ‘남성의 성욕은 원초적이라 성매매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성욕을 억압해 봤자 성폭력 범죄와 음성적 성매매만 늘어난다는 ‘성매매특별법 필패(必敗)론’으로 결론 맺는다. 존스쿨 수강생 중엔 “남자 대 남자로 터놓고 선생님은 업소 가본 적 없느냐”고 남자 강사에게 물으며 “성매매특별법 폐지 운동에 동참하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박경원 보배정신건강상담센터장은 “성매수자 가운데 정상적으로 성 접촉할 수 있는 남성이 상당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성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며 “상대 여성을 지배하려는 비뚤어진 욕구와 자연스러운 성욕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지쳐가는 警
… 자고나면 변종… 경찰 단속 한계
키스방 포옹방 귀청소방 립카페


14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오피스텔의 ‘오피방’에서 성매매를 하던 남녀와 업주가 손님을 가장하고 단속을 벌인 경찰에 적발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14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테헤란로의 한 성매매 업소 ‘실장’ 박모 씨(27)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밤 10시에 혼자 오겠다”고 예약한 손님이 동행 여러 명을 이끌고 나타난 것.

은밀하게 성매매를 알선하는 속칭 ‘오피방(대형 오피스텔)’을 단속하려고 이날 서울지방경찰청 광역단속수사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원룸에서 벌거벗고 누워 있던 20대 남녀는 “우리는 애인 사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장 박 씨와 여성 사이에 오간 문자를 확인하자 입을 닫고 고개를 숙였다. 여성이 창밖으로 급히 내던진 콘돔은 경찰이 건물 주차장에서 수거했다. 수사팀 장문옥 경위는 “이들은 성매매의 결정적 증거인 피임기구를 어떻게든 숨기려 한다”며 “콘돔을 입으로 삼키는 여성도 있다”고 했다.

집창촌 형태에서 탈피한 다양한 성매매 업소들이 지능적인 영업 방식을 도입하면서 경찰 단속은 더욱 어려워졌다. 오피방 등 일부 업소는 전화예약을 거치지 않은 손님은 아예 받지 않는다. 단속에 대비해 손님의 명함이나 웹사이트 아이디를 요구하는 업소도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는 ‘애인대행’ ‘조건만남’ 등의 ‘1인 성매매’나 여관 카운터에서 점조직 형태의 보도방을 통해 알선하는 성매매는 고정된 업소에 거점을 두지 않고 은밀히 이뤄져 실태 파악조차 힘들다.

단속팀은 번호 변경이 쉬운 ‘선불폰’으로 홍보 전단을 뿌린 업소에 직접 예약을 하고 단속에 나선다. 사용한 번호는 곧장 ‘경찰 번호’로 낙인찍혀 두 번 사용할 수도 없다. 업주들이 단속반의 차량 번호까지 문자로 공유하는 통에 수사팀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차량 번호판과 전화번호를 바꿔야 한다. 업소 입구의 폐쇄회로(CC)TV에 단속반이 비치면 업주가 철문을 걸어 잠그거나 손님과 종업원을 재빨리 뒷문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허탕을 치는 일도 잦다. 단속에 성공하더라도 업주가 벌금 50만 원가량을 내고 태연히 영업을 재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매매와의 끝없는 술래잡기에 현장 경찰관들도 지쳐가고 있다. 계속된 단속에도 ‘키스방’ ‘포옹방’ ‘귀청소방’ ‘립카페’ 등 유사성행위를 알선하는 변종 성매매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어서다. 일선 경찰서 전담 경찰관들은 인터넷과 관련 112 신고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성매매를 파악하고 하루 두세 차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성매매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업소를 단속·관리하는 경찰이 업주로부터 뇌물을 받고 불법행위를 눈감는다’는 세간의 시선도 부담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차라리 관할 구청이나 지자체가 은밀히 벌어지는 성매매를 단속하고 경찰은 늘어나는 강력 범죄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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