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단테/A N 윌슨 지음·정혜영 옮김/551쪽·2만8000원·이순
단테는 사랑의 혁명가다. 하나님의 전유물, 신적이었던 사랑을 인간에게 투사시킨 인물. 그래서 단테의 ‘신곡’은 중세를 떠나보내는 ‘장송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순 제공
단테의 책은 동시대 피렌체 사람들에게도 난해한 책이었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정치범이었다. ‘신곡’은 난해한 책일 뿐 아니라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이기도 했다. 외면당하던 단테와 ‘신곡’을 되살린 사람은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1313∼1375)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인곡(人曲)이라 불렀고, 단테의 책을 신곡(神曲·Divine Comedy)으로 불렀다. 우리는 보카치오의 소개를 통해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남남이 된다. 단테는 피렌체의 명문가 규수인 젬마 도나티와 결혼하게 되고, 베아트리체 역시 은행가였던 바르디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상실한 첫사랑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단테는 ‘신곡’의 처음 시작부터 지옥으로 내려간다. 베아트리체가 없는 삶, 가슴 뛰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우리는 이미 지옥의 문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신곡’은 로마의 건국신화를 쓴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고, 천국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흥미롭게도 단테는 1000쪽이나 되는 ‘신곡’에서 단 한 번도 아내 젬마를 거명하지 않았다. 정치범으로 객지를 떠돌아다니던 남편이 다른 여자 이름을 줄기차게 읊어대는 것을 보았다면, 아내는 화병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진 단테’를 쓴 저자는 이러한 단테의 독특한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숙고하는 삶(vita contemplativa)’과 ‘행동하는 삶(vita activa)’의 조화를 추구하던 단테에게 사랑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저자는 ‘신곡’을 단테가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기 위한 알레고리화된 자서전이라고 해석한다. 알레고리란 말이 어려우면, 상징이나 비유로 보면 될 것이다. 사랑에 빠진 단테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며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 오가는 자기 고백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근 연세대 교수·신학
사랑의 지성이 메말라버린 한국 땅에, 권력을 향한 질주만이 횡행하는 이 시대를 향해, 단테의 영혼이 한 권의 책과 함께 다가오고 있다. 이 책을 펼치는 자, ‘사랑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아는’ 사랑에 빠진 단테가 되리라. 한형곤 선생께서 완역한 ‘신곡’(서해문집)과 함께 비교하면서 읽으면 깊어가는 가을이 더욱 멋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