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중음악계의 최고봉인 ‘빌보드핫100’ 정상을 넘보는 비결에 대해 AP통신이 ‘덜 세련된’ 이미지 덕을 봤다는 분석 기사를 썼다. 미국인들은 슈퍼주니어처럼 잘생기고 멋진 스타일의 동양 남자는 불편하고, 브래드 피트나 키아누 리브스만큼은 아닌, 적당히 생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AP통신의 분석을 싸이 비하 발언으로 해석하며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싸이가 한국의 월드 스타들과 과(科)가 다른 건 사실이다.
▷서구에서 동양 남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리샤오룽 같은 무협의 고수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류 배우들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아이조’의 이병헌은 선악을 따지지 않고 주어진 임무만 수행하는 스톤 섀도, ‘닌자 어쌔신’의 비는 비밀조직에서 훈련받은 인간 병기로 나왔다. ‘워리어스 웨이’의 장동건도 우울한 과거를 지닌 칼잡이였다. 이들은 칼을 제 몸처럼 쓰면서도 영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서툰 말수 적은 캐릭터였다.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과 케이드라마의 꽃미남 한류 스타는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굳어진 이런 전형에서 벗어나 진화했다. 홍석경 프랑스 보르도3대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서구 여성들이 환호하는 한류 스타는 더이상 ‘무술엔 능하나 여성을 매혹시킬 수 없는 유아적 존재’가 아니다. 외모도 노래도 연기도 다 되는, 할리우드 스타 못지않은 매력 덩어리들이다. 하지만 한류 꽃미남들의 이미지는 서구의 미적 기준을 따랐을 뿐이지 그를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싸이는 다르다. 무술은 뛰어나나 서구에 결코 위협적이지 않은 과묵한 칼잡이, ‘백인 따라하기’ 혐의를 벗지 못하는 꽃미남들의 열등감이 싸이에겐 없다. 그야말로 ‘쫄지 않는 애티튜드’다. 그는 서구의 쿨한 영웅들을 따라하지 않는다. 울퉁불퉁 생긴 그대로 신나게 말춤을 추어댄다. 싸이는 미국 방송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로 유머 감각을 뿜어낸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여성 앵커는 “싸이가 다른 아시아 스타들과 달리 유머감각이 있다”며 한국 특파원에게 “왜 그렇게 그는 웃기냐”고 거듭 물었다. 싸이가 그럭저럭 펑퍼짐한 외모로 떴는지,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동양 남자’ 하면 떠오르던 고정관념을 깨는 ‘그런 싸나에’임은 분명하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