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고양이 닮은 도시여자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청계천변 카페 옥상에 올라온 김완선(43)은 커다란 고양이눈을 한 차가운 도시 여자의 풍모에 거침없는 입담으로 기자를 움찔하게 했다. ‘응답하라 1987’ 같은 드라마가 나온다면 1회 첫 장면은 이 여자의 ‘써니텐’ 광고가 될지 모른다. 김완선이 1990년 낸 5집(‘가장무도회’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은 한국 여자가수 앨범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100만 장 이상 팔렸다.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한 뒤 독보적인 외모와 춤으로 1980, 90년대 가요계에 폭탄을 던졌다.
그는 최근 기획사 ‘완선 W 엔터테인먼트’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미니앨범 ‘더 비어’도 냈다. 펑크록밴드 옐로우몬스터즈의 ‘벤자민’, 감성 팝 싱어송라이터 에피톤 프로젝트의 ‘오늘’ 등 인디 뮤지션들의 곡을 애잔한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댄스곡 ‘캔 온리 필’은 클래지콰이의 DJ 클래지에게서 받았다. ‘나는 가수다’로 유명해진 작곡·편곡가 돈 스파이크와 김완선이 공동 프로듀싱했다.
지난해 댄스곡 ‘슈퍼러브’로 6년 만에(“5년이라고 해주세요. 자꾸 나이도 늘리고 다 늘려, 다!”) 가요계에 돌아왔던 그가 이번엔 인디 뮤지션들과 손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제 색을 찾는 과정이에요. 가수로서의 방향성, 아직도 갈등돼요. 지금 아이돌도 (저처럼) 10, 20년 뒤엔 나이에 맞는 다른 걸 찾아 나서겠죠.”
그는 데뷔하던 17세 시절을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땐 틀에 갇혀 있었고, 그게 싫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제게 춤만 기대하는 게 감옥이었죠. 인순이의 리듬터치에서 데뷔 준비하던 15세 때부터 작곡가 신병하 씨로부터 화성학과 오케스트라 편곡을 배웠어요.”
초등학교 시절 ‘황인용의 영팝스’에서 나오는 킹 크림슨,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음악에 탐닉했던 조숙한 아이는 자기 곡도 몇 곡 썼다. “‘너무 서정적이다. 이미지와 안 맞는다’고 해서 앨범에 못 실었어요. 상처받고 (작곡을) 확 포기해버렸죠. 반항심리로 날 방치한 거죠. 나, 왜 그랬을까?”
그는 미혼이다. 남자친구 대신 ‘남자인 친구’들이 많다고. “손무현 이태윤 같은 남자 뮤지션들 위주.” 결혼은? “난 자유 없으면 못 산다고 내가 그랬잖아요. 연애도 잘 못해요. 남자 다루는 데는 소질 없어.”
‘완선 W 엔터테인먼트’의 W는 여성(women)의 약자다. 여자로서 여자 연예인만 키우겠다는 뜻. 연습생 중 하나가 마리(최혜리)다. “어렸을 때 노래하는 걸 보고 가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신곡 ‘오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그는 김완선의 조카다. ‘제작자: 연예인=이모: 조카’의 등식이 반복된다. “어쩌죠…. 운명인가봐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