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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무위이처(無位而處)

입력 | 2012-09-26 03:00:00

無: 없을 무 位: 자리 위 而: 말 이을 이 處: 곳 처




제위에 오른 군주의 처신을 말하는 것으로, 권세나 기호를 드러내기보다는 감춤으로써 힘을 더 갖는다는 의미다.

“고요하여 그 자리에 없는 듯 처신하고, 막연하여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도록 한다(寂乎其無位而處, X乎莫得其所).” 한비자 ‘주도(主道)’

현명한 군주가 되기 위한 영원불변의 도는 신하들이 자신의 재능을 다 발휘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 있다. 군주가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일이 모든 일을 다 관여해서는 안 된다. 백성이 법을 우습게 아는 것은 군주가 자신만의 기호를 들이대어 나대기 때문이다. 군주가 권위를 세우지 않고 호들갑을 떨면 오히려 백성이나 신하들에게 흠결로 나타나게 된다. 은인자중(隱忍自重)이라는 말처럼 그 권위를 지킬 수 있는 무게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며 일관된 잣대를 갖고 백성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양두구육(羊頭狗肉·양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이란 말은 군주의 처신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제나라 영공(靈公)은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궁중에 있는 미녀들을 데려와 남장을 시키고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겼다. 영공의 이런 취미는 제나라 전체에 전해져 백성 가운데 남장한 미녀가 나날이 늘어갔다. 영공은 궁중 밖에 있는 여자들은 절대로 남장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지만, 금령이 지켜지지 않았다. 영공은 그 이유를 제상 안자(晏子)에게 물었다. 안자는 “영공의 행위는 마치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파렴치한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일침을 가했고, 영공이 즉시 남장을 금했다는 사례다.

군주가 사사로운 쾌락에 빠져들면 직무를 소홀히 하게 돼 적지 않은 폐단을 부른다. 제왕의 자리는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수많은 백성과 신하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기에 그의 처신은 늘 ‘무위이처(無位而處)’의 냉정함이 요구된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