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 없을 무 位: 자리 위 而: 말 이을 이 處: 곳 처
“고요하여 그 자리에 없는 듯 처신하고, 막연하여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도록 한다(寂乎其無位而處, X乎莫得其所).” 한비자 ‘주도(主道)’
현명한 군주가 되기 위한 영원불변의 도는 신하들이 자신의 재능을 다 발휘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 있다. 군주가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일이 모든 일을 다 관여해서는 안 된다. 백성이 법을 우습게 아는 것은 군주가 자신만의 기호를 들이대어 나대기 때문이다. 군주가 권위를 세우지 않고 호들갑을 떨면 오히려 백성이나 신하들에게 흠결로 나타나게 된다. 은인자중(隱忍自重)이라는 말처럼 그 권위를 지킬 수 있는 무게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며 일관된 잣대를 갖고 백성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나라 영공(靈公)은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궁중에 있는 미녀들을 데려와 남장을 시키고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겼다. 영공의 이런 취미는 제나라 전체에 전해져 백성 가운데 남장한 미녀가 나날이 늘어갔다. 영공은 궁중 밖에 있는 여자들은 절대로 남장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지만, 금령이 지켜지지 않았다. 영공은 그 이유를 제상 안자(晏子)에게 물었다. 안자는 “영공의 행위는 마치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파렴치한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일침을 가했고, 영공이 즉시 남장을 금했다는 사례다.
군주가 사사로운 쾌락에 빠져들면 직무를 소홀히 하게 돼 적지 않은 폐단을 부른다. 제왕의 자리는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수많은 백성과 신하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기에 그의 처신은 늘 ‘무위이처(無位而處)’의 냉정함이 요구된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