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대림상가 일대서 촬영… 철공소는 산업화 이면 상징
영화에 등장하는 강도의 집은 아세아전자상가 건너편 청계천변에 있는 6층 건물의 6층으로 실제로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인근에는 주로 조명상가가 들어서 있다. 영화에 수차례 비춰지는 아세아전자상가는 원래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던 아세아극장이 있던 건물이지만 2001년 문을 닫으며 전자상가로 바뀌었다. 이제는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합동총회신학교의 ‘할렐루야는 영원하리라’라는 문구와 십자가만이 선명하다.
영화가 촬영된 청계천 일대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세운상가 앞에 공원이 조성되는 등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주변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가 있어 고층건물을 지을 수 없는 데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주변 경관을 보존하느냐, 전면 재개발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재개발이 지연되고 있다. 그 사이 경제성장기 서울 도시개발의 첨단을 달렸던 이 일대는 도심에서도 가장 개발이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화는 후반부 청계천에서 벗어나 양평과 일산 등 경기 외곽지역을 향한다. 마지막 남은 몸뚱이마저 빼앗긴 청계천 사람들이 서울에서 떨려 나가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박스에 정착하는 곳이다. 강도가 채무자를 억지로 떨어뜨려 다리를 절게 만드는 장면, 엄마와 나무를 심는 장면 등은 양수리 카페촌 인근의 20여 년 된 폐건물에서 찍었다. 비닐하우스 장면은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실제 비닐하우스촌에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영화는 자본의 논리에 따른 변화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까지 바꿔 놓고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영화는 그 변화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은 채, 달리는 트럭 아래에 스스로 몸을 매단 강도의 피가 도로 위에 흩뿌려지는 장면만을 오래도록 비추며 끝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