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김모 할머니(82)는 동네 다방을 자주 찾았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거기만 한 곳이 없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집에 폐쇄회로(CC)TV를 달아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사업을 하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고급 빌라에 도둑이라도 들까 봐서였다.
할머니가 다방을 찾을 때마다 말상대가 돼 줬던 다방 여주인은 건축 일을 하는 신모 씨(57)를 소개해 줬다. CCTV를 설치하겠다며 할머니 집을 가본 신 씨는 범행을 계획했다. 이모 씨(46)와 함께 할머니의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환심을 샀다.
4월 할머니의 은행 심부름을 하게 된 이들은 김 할머니 통장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통장에는 6억460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벌어 온 돈을 착실히 저금해 모은 돈이었다.
이들은 통장 잔액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김 할머니 아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 씨를 구속하고 달아난 신 씨를 추적 중이라고 26일 밝혔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