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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자궁암 키트… 2007년이후 검사 11만명 다시 받아야

입력 | 2012-09-28 03:00:00

■ 무허가 진단 키트 생산-유통업체 적발… 대표 입건





자궁경부암 조기진단 검사를 받은 여성 약 11만 명이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진단 결과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사용을 승인하지 않은 자궁암 진단키트가 전국 산부인과에서 무더기로 사용된 사실이 경찰 조사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두 곳도 이 무허가 진단키트로 환자 8000여 명의 자궁암 검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식약청에서 허가받지 않은 자궁경부암 진단키트를 만들어 유통시킨 혐의로 바이오벤처기업 굿젠의 대표 문모 씨(58)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굿젠은 여성질환 전문 검사대행업체인 C사를 통해 2007년부터 현재까지 전국 611개 산부인과에 이 키트를 납품했다. 이들 병원에서 이뤄진 검사는 10만2000건에 달한다.

굿젠은 의약품 도매상인 S사를 통해 서울아산병원과 강북삼성병원 등 유명 대형병원에도 무허가 진단키트를 공급했다. 두 병원에서는 모두 8000여 명의 환자가 무허가 진단키트로 자궁경부암 조기진단을 받았다. 병원 측은 경찰 조사에서 “업체에서 허가 제품이라고 해 믿었을 뿐 무허가 제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해당 업체의 진단키트는 연구용으로만 사용돼 환자 입장에서는 검사 결과에 별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아산병원 측이 무허가 진단키트를 사용한 검사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에 수가를 청구하고 환자로부터 검사료를 받은 점 등을 근거로 문제의 진단키트를 환자용으로도 썼다고 의심하고 있다.

현재 자궁경부암 검사는 이 병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존재 여부를 진단키트를 통해 확인하는 방식이 많이 쓰인다. 여성의 자궁에서 채취한 조직을 키트에 떨어뜨린 뒤 반응을 보고 감염 여부를 판단한다. 진단키트는 검사 가능한 바이러스의 개수에 따라 22개, 40개, 43개 등 세 종류로 나뉜다. 식약청에 따르면 굿젠 측은 ‘22개종’과 ‘40개종’에 대해선 허가를 받았지만 문제가 된 43개종은 허가신청도 하지 않았다. 식약청 관계자는 “효과를 입증하는 임상시험 자료가 부족해 허가신청을 못한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굿젠은 2010년에도 다른 무허가 제품을 생산하다 식약청에 적발돼 70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그러고도 또다시 무허가 제품을 만들어 유통시킨 것이다. 굿젠은 병원 측에서 무허가 자궁암 진단키트에 환자의 시료를 넣어 넘겨주면 자궁경부암 여부를 검사해주면서 검사료로 약 22억 원을 벌었다. 검사 원가는 1만1000원 정도지만 환자들이 병원에 낸 검사 비용은 5만∼20만 원 선이었다.

경찰은 이들 11만 명을 포함해 최대 23만 명의 자궁암 검사 결과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굿젠과 병원을 연결해준 대행업체 C사가 굿젠의 허가된 진단키트 12만 명분을 납품하는 과정에서도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다. 경찰은 “C사의 업무는 진단키트를 병원에 공급한 뒤 채취된 여성의 시료를 받아와 다시 굿젠에 넘겨 검사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시료를 옮길 때 온도를 영상 3도로 유지하는 게 원칙인데 C사 직원들은 병원에서 받아온 검사시료를 한여름에 차 안에 방치하는 등 관리를 함부로 해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C사는 무허가 진단키트를 납품하면서 69개 병원 의사 등 병원 관계자들에게 3억2000만 원의 리베이트까지 제공한 사실이 경찰조사로 드러났다. 또 진단키트를 공급받은 611개 병원이 환자의 질 내부 확대촬영 사진 같은 진료정보 등 개인정보 23만 건을 C사 측에 무단 유출한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1000만 원 이상의 고액 리베이트를 받은 병원 관계자 8명과 C사 대표 권모 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서울아산병원과 강북삼성병원에 대해선 보건복지부에 통보해 영업정지나 과징금 등 행정처분을 받게 할 계획이다.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 여성의 암 가운데 사망률이 2위로 우리나라 20, 3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성관계를 시작한 여성이라면 1년에 한 번 조기진단을 받는 게 좋다. 하지만 무허가 진단키트로 검사를 받은 약 11만 명의 여성은 실제와 다른 검사 결과를 통보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 “무허가 키트라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자궁경부암 발병 소지가 커 긴급 조치가 필요한 여성들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조직검사 등 정밀검사가 불필요한데도 거액을 들여 추가검사를 받는 사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채널A 영상] 자궁경부암 백신, 남성에게도 필요…“男 질병도 예방”

○ ‘굿젠 43개종’ 꼭 알아보세요

무허가 진단 키트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한 여성들은 검사를 다시 받는 게 좋다. 경찰은 “2007년 1월부터 현재까지 검사를 받은 여성은 해당 병원에 진단 키트 공급업체를 문의해 굿젠 ‘43개종’으로 확인되면 재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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