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권은 밤에게/이신조 지음/208쪽·1만1000원·작가정신
소설가 이신조
여기 독특한 부동산중개업자가 있다. 스물두 살의 뚱뚱한 젊은 여성인 ‘나’. 엄마와 할머니를 잃고 혼자가 된 나는 계부가 차린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일한다. 나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매물로 내놓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 마룻바닥을 쓸고, 화장실도 청소한다. ‘추러스’도 먹고 밀감도 까먹는다. 밤이 되면 침낭을 깔고 잠을 청한다. 멀쩡한 집이 따로 있지만 나는 빈집들을 돌며 평안함을 느낀다. 마치 주인에게 버려진 동물을 돌보듯이, 집이 갖고 있는 상처와 추억을 보듬어준다.
‘밤의 시간은 1초씩, 1분씩 흐르지 않는다. 아니, 밤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는 것은 낮의 시간이다. 밤의 시간은 웅덩이처럼 고인다, 이슬처럼 맺힌다, 안개처럼 퍼진다.’
‘방(집)의 임자는 따로 있다’는 말을 믿는 나는 운명적인 집을 만난다. 오래된 단층 주택인 ‘장독대집’이다. 좀처럼 나가지 않던 이 집에 ‘쌍둥이 여사들’이 이사를 오면서 나는 이들과 가까워진다. 소설은 이즈음 한 번 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쌍둥이 여사들의 집에 ‘나이트룸’이 있으며, 이 공간에 혼자 들어서면 무언가 치유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는 나이트룸에서 달게 낮잠을 잔다. 다양한 여성들이 나처럼 쌍둥이 여사 집을 찾아, 나이트룸에 들어가고 평온해진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소설을 읽고 나면 ‘나’처럼 심야에 거리로 나서고 싶어진다. 조명 밝은 패스트푸드점, 편의점에 앉아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외로움을 들여다보고 싶다. 작가는 컵라면 안쪽에 있는 표시선에 맞춰 알맞게 물을 붓듯 우리가 느끼는 현대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딱 맞게 채워 넣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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