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면접관… 대선토론도 월드컵처럼 즐기자◇속지 않는 국민이 거짓 없는 대통령을 만든다김상범 박설리 박소령 유혜영 최현도 지음/368쪽·1만5000원·위즈덤하우스
2007년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국의 대선 후보자 토론회(위). 후보들이 카메라를 향해 나란히 앉아 진행한 토론회는 엄숙하고 딱딱했다. 반면 2008년 미국의 대선 후보자 TV 토론(아래)에서는동적인 분위기에서 두 후보가 마주 보며 현장에 참석한 유권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동아일보DB·로이터 연합뉴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은 대권주자들에 대해 누가 낫네, 누구는 절대 안 되네 품평을 한다. 그러나 구체적 평가 기준을 가지고 후보자들의 정책과 주변 인물을 꼼꼼히 검증한 뒤 투표소에 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부한 한국인 학생과 졸업생 5명이 함께 쓴 이 책은 유권자가 후보를 제대로 판단하도록 돕는 가이드북이라고 할 만하다. 저자들은 특히 대선 토론회에 주목한다. 토론이야말로 유권자들이 후보를 효과적으로 검증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선 토론은 곧 대선 후보자들의 ‘면접’이고 국민이 면접관인 셈이다.
저자 중 유혜영 씨는 “미국의 대선 토론은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통로로 유권자들의 참여를 이끌고 형식도 세련돼 재미있고 이슈가 된다”며 “한국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치에 관심이 높은 나라임에도 대선 토론은 왜 재미가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저자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에서 수십 년간 이뤄진 대선 토론 영상과 발언을 조사해 분석했다. 이를 통해 “토론이 재미있고 효과적이려면 후보들이 탁구를 치듯이 주장과 반박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판단을 제시하고, 사회자는 이슈에 대해 ‘아픈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실린 118가지 ‘잘한 토론’과 ‘못한 토론’의 발언 사례를 읽으면 한국 대선 토론 시청을 앞두고 예습을 하는 기분이 든다. 책에 실린 2007년 한국 대선 토론 내용을 보면 후보들의 인신공격과 동문서답, 그리고 구체적 정책은 없으면서 대통령만 되면 다 해결하겠다는, 넘치는 의지에 때론 실소가 나온다.
현 여당의 2007년 대선 공약집에는 ‘도시 내 1인당 공원 면적을 파리 수준인 10m²로’ ‘출산에서 취학까지 정부가 돌보는 사회’ 등의 내용이 나온다. 당시 유권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조차 의문이다. 유권자를 유혹할 혜택만 강조할 뿐 그 대가는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같은 해 대선 토론에서 현 야권의 후보들은 기초노령연금에 대해 “임기 내에 2배 올리겠다” “액수를 3배 정도 늘리고 지급 대상도 80%로, 정년은 65세로 늘리겠다” 등의 약속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지, 정년을 늘리면 신규 일자리 감소는 어떻게 할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 책에 저자들은 ‘공공의 가치’를 향한 고민의 결과와 아이디어를 담았다. 선거 후 정치인들에게 속았다는 실망감이 반복되면서 그동안 많은 유권자가 정치에 등을 돌려왔다. 그러나 훌륭한 대통령을 뽑고 세상을 바꿀 마지막 ‘지푸라기’는 ‘유권자 스스로 더욱 깐깐해지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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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