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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정진수]‘빨리빨리’ 과학교과서

입력 | 2012-10-03 03:00:00


정진수 충북대 교수·물리학

최근 우리나라 교과서 진화론 내용이 국제 과학 잡지계를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교과서 진화론 일부 내용이 현대 진화론과 다르거나 정확하지 않았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이 과학이 종교에 굴복하는 모습으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변화하는 과학이론을 교과서에 제때 담아내기 위한 투자나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고체물리학 전공자인 나는 다른 전공 분야 전문성에 자신이 없다. 태양계 밖 다른 행성을 찾는 최근의 시도나,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에 대해 설명하라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과학의 다양한 발전상을 교과서에 소개하려면 많은 전문가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교과서는 이런 투자가 아직 부족하다.

현대 물리학이 암 진단이나 주식시세 분석에 활용되는 세상이다. 첨단 과학을 알리려면 전문 분야 저자들이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면서 보완해야 하는데 현재 대부분 과학교과서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각 과목의 저자가 독립적으로 쓴 원고를 묶은 데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영국 물리학회가 만든 물리교과서는 30여 명의 저자가 4년 넘게 시간을 들여 만들지만 우리는 8명 정도의 필자가 1년 안에 써 낸다.

세계 과학교육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과학지식을 많이 가르치기보다 지식을 사용할 줄 알고, 증거에 바탕을 두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사고를 하고, 사회적 목적을 위해 과학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소양을 가르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과학 용어를 대화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다.

요즘 아이들은 만화나 인터넷에서 블랙홀을 접한다. 집 안의 많은 가전제품이 반도체를 이용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장 유명한 과학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거침없이 아인슈타인을 꼽지만, 그가 왜 유명한지는 모른다. 2년 전부터 우리도 고교 과학교과서에 첨단 과학을 넣어 학생들이 선택하기만 하면 블랙홀, 반도체, 양자론, 상대론을 배울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내용을 다 배우는 학생은 매우 적다.

사회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새 기술이 나타나서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사라진다. 학생들이 첨단 과학에 노출되는 나이도 점점 어려진다.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마주치는 첨단 과학의 생소한 단어들을 누군가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 과학적 소양을 높이려면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첨단 과학을 소개해야 한다.

상대론의 시간 지연 효과가 내비게이션 위치 계산에 사용되고, 양자론의 광전 효과가 음주측정기에 이용된다는 사실까지는 몰라도 원적외선이란 용어만 나오면 만병통치라고 선전하는 내용까지 쉽게 믿지는 않을 만큼의 과학적 소양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가 무너졌을 때, 미디어는 틀린 단위를 사용했고, 1년에 X선 사진 한 장 찍는 정도도 안 되는 수치의 방사능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모두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이다.

마침 5일은 제7회 ‘교과서의 날’이다. 1948년 당시 문교부가 처음으로 학교교육에 사용할 교과서 초등국어 1-1을 발행한 날이다. 과학 수업을 통해 소양을 키우기 위해서는 과학교육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다.

정진수 충북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