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그때 나는 그 승려가 만다라를 보관하기 위해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리는 과정의 중요성을 깨닫기 위해 그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인생도 그 승려가 모래로 그렸다가 지워버리는 만다라와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만다라를 그리는 과정이고 다 그렸다고 생각되는 순간 만다라를 지우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다라는 완성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리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목적을 완성시켜야 목적에 다다르는 게 아니라, 목적을 버리고 지우는 과정 속에서 목적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만다라를 지우고야 얻는 깨달음
가톨릭에서도 ‘십자가 성 요한’ 성인은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얻으려고 하지 말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되려고 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목적에 다다르는 길은 수없이 많지만 목적을 버림으로써 목적에 다다르는 길이 바로 진정한 길이라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그 목적을 자꾸 생각하면 조급해지고 힘들어진다. 의욕이 앞서 자칫 과욕을 불러올 수 있다. 과욕은 목적으로 가는 길을 힘들게 만든다. 등산할 때 왜 위를 올려다보며 걷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정상에 오른다고 생각하면 산을 오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어서 정상에 올라가야지’ 하는 급한 마음을 가지면 그 순간부터 산행이 힘들어진다.
그것은 과정의 소중함보다 목적에 대한 욕심과 욕망이 앞섰기 때문이다. 욕심은 과정을 힘들게 하거나 파괴시킨다.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과정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무시하면 목적에 다다를 수 없다. 위를 보지 않고 묵묵히 앞을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목적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산길에 핀 꽃들과 등 굽은 소나무의 아름다운 곡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멀리 산 아래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쉬기도 해야 등산이 즐겁다. 산의 정상을 오른다는 목적만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산행의 즐거움은 반감되고 힘들게 된다. 인생의 어떤 목적도 처음부터 출발하자마자 바로 그 목적에 다다를 수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산 밑바닥을 딛고 올라가야 비로소 산 정상에 다다르듯 인생의 목적이라는 정상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성공을 바라지만 성공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성공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성공을 목적으로 삼으면 인생이 공허해진다. 성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임무를 다하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일 뿐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금메달을 꼭 따야지’ 하고 생각할 때보다 ‘지금 최선을 다해야지’ 하고 생각할 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을 것이다. 실제로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더 기뻐한다고 한다. 은메달 수상자들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동메달 수상자들은 만일 조금만 실수했더라면 아예 수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적에 집중하되 집착하지 않기
이렇게 인생은 목적보다 과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좀더 잘했더라면’에 초점이 맞춰지면 인생은 기쁨을 잃게 되고, ‘이 정도라도 했으니 다행’에 초점이 맞춰지면 인생은 기쁨을 잃지 않게 된다.
인간은 목적을 달성한 이에게 관심을 갖지만, 신은 열심히 노력하는 이의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목적은 결과일 뿐, 목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이 중요할수록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목적에 몰두하되 집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목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그 목적에 다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