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700m 화학폭탄 맞은듯 잎도 열매도 만지면 부서져
9월 27일 발생한 경북 구미시 산동면 불산(弗酸·불화수소산) 가스 누출 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봉산마을.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곳은 심각한 사고 후유증에 여전히 신음하고 있었다. 3일 만난 주민들은 “마을이 독가스를 뒤집어썼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느냐”며 애절한 표정으로 기자의 손을 잡았다. 노인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마을에는 담장 위에 뻗은 호박 줄기 이외에는 ‘녹색’이 보이지 않았다. 집 안 감나무, 비닐하우스 안의 포도 멜론 고추 대추나무 등 식물은 모두 바싹 말라 오그라들었다. 포도는 살짝만 건드려도 부스러졌다. 넓고 푸른 잎을 자랑하던 바나나 나무도 완전히 시들었다. 황금빛이어야 할 들판은 회색빛으로 바뀌었다. 한 주민은 “제초제를 여러 번 뿌려도 없어지지 않던 억새가 하루 만에 말라 버렸다”고 했다. 마을회관 앞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1991년 발생한 구미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의 악몽을 떠올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소가 잘 먹지 않아도, 개가 잘 짖지 않아도 ‘불산 가스 때문인가…’ 하며 불안에 떨었다. 사고가 난 공장과 거의 맞붙은 곳에서 포도과수원을 하는 김정준 씨(51)는 “주위가 온통 말라 버렸는데 사람이라고 괜찮겠느냐”고 했다. 사고 공장에서 반경 700여 m 안 봉산리 마을 논밭도 성한 곳이 없었다. 이삭과 잎, 열매가 말라 있었다. 고구마 배추 무 콩 같은 밭작물도 대부분 말라 죽어 수확할 것도 없지만 주민들은 내년과 그 이후를 더 걱정하며 발을 굴렀다. 땅이 오염됐을 텐데 씨를 뿌린들 제대로 자라겠느냐는 것이다. 김영호 씨(58)는 “수확을 해도 독가스를 뒤집어쓴 쌀을 누가 먹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주민도 늘고 있다. 속이 메스껍다거나 두통에 시달린다는 주민이 상당수다. 사고 발생 후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추석 연휴가 지나 약국을 찾는 주민이 대부분이다. 노인들은 사고 이후 소화불량으로 신음하고 있다. 150여 가구 250여 명이 살고 있는 이 마을에는 60∼80대가 70%를 넘어 건강이 나빠지는 주민이 더 생길 우려가 크다. 사고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구미소방서 대원 중에서는 피부 발진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구미시와 경북도는 3일부터 봉산마을 등 사고 공장 주변 마을을 대상으로 대기와 수질, 농작물 오염 등 역학조사(건강장애 원인조사)와 가구별 피해 조사를 하고 있다.
:: 불산 ::
무색의 자극적 냄새가 나는 휘발성 액체. 독성과 침투력이 매우 강해 유리와 금속을 녹이는 성질을 갖고 있다. 녹물을 제거하는 데 주로 쓰인다. 공기와 결합하면 기체로 변한다. 체내로 흡수되면 호흡기 점막을 해치고 뼈를 손상하거나 신경계를 교란한다.
구미=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