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브릴랜드(1903∼1989) 》
보통의 남자들이 쇼핑을 싫어하는 것처럼 쇼퍼홀릭은 대개 등산을 두려워한다. 가파른 경사를 기어오른 대가로 쇼윈도가 아니라 ‘내면의 결핍’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몇 시간 동안 끙끙거리며 올라간 끝에 보이는 것이 바위와 나무뿐이라니….
그래도, 가을이니까, 등산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있고, 보라색 야생화와 초록의 잎사귀들은 그레이스 켈리를 위해 만든 구치의 스카프라고 상상해 보지만, 나의 에고는 여기는 해발고도 469.4m의 마니산 정상이며 쇼퍼홀릭에겐 너무 가혹한 장소라고 말한다.
하이힐 금단 증상까지 겹쳐 맨 뒤로 처진 내 앞에 문득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기가 세다는 마니산에서도 기가 모이는 곳이란다. 바위가 겪은 억겁의 시간을 통해 인간이 접신(接神)할 수 있는 곳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한다. 그럴 수도. 누구에게나 시간을 쌓고 기를 모으는 나름의 방식이 있으니. 등반가는 그가 오른 7대륙 최고봉의 이름으로, 쇼퍼홀릭은 물론 쇼핑리스트로!
하지만 내가 가방과 하이힐과 코트를 산 것이 과연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나는 쇼핑의 기억만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눈을 뜨고 집에 돌아가 옷장을 열어 보면 텅 비어 있거나 우주복처럼 생긴 회색 쫄쫄이만 걸려 있다. 유행 때문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영원히 입어야 하는 ‘유니(uni)’한 형식의 ‘폼(form)’!
바위 위에서 내가 악몽을 꾼 건, 파랑과 분홍, 보라 일색인 등산 유니폼의 강박이 수맥처럼 기를 막아서였다. 나는 등산복이 스타일과 TPO(때와 장소, 상황에 따른 의상 예절)를 접어 두고, 실직자의 실내복이나 직장인의 오피스룩처럼 아무 데서나 받아들여지는 것을 볼 때마다 여긴 ‘북벽’이 아니라고 입을 내밀곤 했다. 그러다 마침내 등산복이 집 나온 중년남녀를 위한 아웃도어 커플 패션으로까지 확장된 것을 보고 등산이 두려운 정당한 이유를 발견했다.
38년 동안 미국 패션지의 기자였고, 말년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자문역으로 일하며 미국적 스타일의 전형을 제시한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어떤 스타일도 갖지 않는 것보다는 천박한 저속함이 삶에서 더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동서남북으로 늘어나는 신축성, 인체해부도처럼 들어간 무분별한 절개선들로 스타일과 취향을 정복해 버린 등산복에서 내가 느끼는 건 육체의 기능적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치기다. 빈자리마다 꽝꽝 박힌 등산 브랜드의 로고는 남성성에 대한 판타지를 상징할 뿐이다. 쫄쫄이 우주복을 대신한 일상의 제복, 옷의 주름에 담긴 스타일은 사라진 세계.
消波忽溺 쇼퍼홀릭에게 애정과 연민을 느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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