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모인 사내들이 막내 사촌동생을 안주로 삼았다. “어떤 여자를 바라느냐”는 형들의 질문에 동생이 대답했다. “취미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 여자라면 오케이죠.”
침묵이 흘렀다. 맏형이 그것을 깼다. “진짜 어려운 조건인데? 그냥 취미생활 즐기면서 혼자 사는 게 낫겠다.” 사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그게 왜 어렵냐”고 따졌다. 같은 취미를 가진 부부가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남자도 따라 웃다가 생각에 잠겼다. 그런 꿈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매주 영화 두 편을 보기로 아내와 결혼 전에 약속을 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챙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었다.
남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아내의 ‘진짜 취미’였다. 웬만한 거장들의 작품은 주제음악까지 줄줄 꿸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결혼을 한 뒤로는 극장에 가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었고, DVD를 구입해 집에서 함께 보다가 그것마저 아이가 생긴 뒤로는 남자 혼자만의 몫이 되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자신과 세상의 합작품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영화 데이트로 누리고 싶었던 아내의 소소한 행복을 남편의 게으름이 앗아버렸을 것이다. 아이를 둘러싼 경쟁의 압박이 아내의 여유를 빈틈없이 메워버렸을 수도 있다. 나날이 힘겨워지는 삶도.
남자는 그런 결론에도 어쩐지 찜찜했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취미라면 주말 밤에 영화전문 채널이라도 챙겨볼 수 있을 텐데. 아이 재워놓고 새벽까지 인터넷을 하느니.
첫째 형의 얘기가 귀에 들어왔다. “우리 딸내미 인형 좋아하는 것 보니까 그게 본능이더라. 여자들한텐 ‘사람’ 그 자체가 관심이자 취미 대상이야. 결혼하면 남편과 아이가 그렇겠지. 그것만도 벅찬데 또 무슨 취미?”
남자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아이를 키워 결혼시키고 나면 아내의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리지 않을까. 그땐 누구를 취미로 삼을까. 혹시 아들 부부?
소름이 돋았다. 그는 아내가 취미를 다시 갖도록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내의 취미는 가정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