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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김억]남산 스타일

입력 | 2012-10-06 03:00:00


김억 홍익대 교수·건축학

추석 명절에 남산 위에 휘영청 뜬 보름달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세계 어느 도시를 둘러봐도 시내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적당한 높이의 산이 중심에 위치한 도시는 없다. 서울 근교에는 등산하기에 좋은 산이 여럿 있지만 접근성과 편리성으로 따지면 남산이 으뜸이다.

평원에 세워진 도시에는 방향 식별이 가능한 자연적인 랜드마크(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가 없기 때문에 인공적인 게 필요하다. 남산은 자연이 준 천혜의 랜드마크이자 관광 자원이다. 정상에 오르면 서울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남녀노소, 한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무공해 휴식공간이자 안식처이다.

서울시와 시민은 남산의 가치를 유지하고 새롭게 업그레이드시킬 의무가 있다. 시는 지금까지 2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산책길을 정비하고, 정상에 있는 편의시설을 개선했으며 남산 자락에 위치한 역사성이 있는 건물과 지역을 보존 개발했다. 장래에 미군기지 이전 후 들어설 용산 공원과 남산이 연결되고 세운상가와 녹지대(그린벨트)로 이어진다면 남산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남산 르네상스’ 거시적 관점 필요

현재까지 진행된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서울의 다른 디자인 입히기 프로젝트와 달리 사람의 손길이 덜 가해져 전체적으로 잘된 사례라고 판단된다. 보여주기보다 ‘사용하기’ 위주로 진행되어 가치를 살리면서도 편리성은 개선해 디자인의 본질이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산으로 오르는 산책로는 차량 진입을 차단해 안전하고 쾌적하며, 자연스러운 연못, 실개천과 화단은 오솔길의 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명동에서 케이블카에 접근하기 위해 경사로에 설치해 놓은 남산오르미는 귀여우면서도 기능적이다. 순환로에 있는 한옥 찻집은 자연과 어우러진 한옥의 아름다움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남산 르네상스 사업이 마무리되어 가는 이 시점에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주변의 역사적 흔적을 없애는 것에 반대한다. 남산 자락은 조선 개국 후 선비들의 주거지였다가 일제강점기 일본국 관사가 들어섰고, 광복 후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화운동을 했던 인사들에게 탄압이 행해진 중앙정보부 건물들이 위치했다.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 초반에 남산골 한옥마을만 재건하고 나머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흔적을 모두 없애려고 했는데 보존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다행이다. 이제 스토리가 남아 있는 건물을 어떻게 재현할지가 과제이다.

둘째, 산 정상을 산 본연의 느낌이 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남산 정상은 지하철 계단을 올라와서 접하는 도심 공간과 다를 바가 없다. 팔각형의 전통 정자는 뒤쪽으로 밀려나 있고, 중앙에는 벤치와 이벤트를 위한 간이무대 같은 덱만 보인다. 남산 N서울타워가 중심이 될 수 있지만 시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주변에 포진해서 산 정상이라기보다 어수선한 쇼핑거리, 놀이공원 입구 같은 느낌이 강하다. 정상에 있는 편의시설의 외관은 좀더 자연친화적으로 포장하는 절제가 요구된다.

셋째, 남산 타워의 조명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남산 타워 조명은 일몰 후에 서울에서 가장 눈에 띄는데 너무 많은 컬러와 밝게 드러나는 전망대 내부 조명 때문에 시민과의 감성적 소통이 안 된다. 조명에 신비감이 없고, 타워 구성 요소들의 조합이 시각적으로 구분되지도 않는다. 지금은 개선되었으나 예전에 한강 다리들의 조명도 그랬었다. 남산 정상으로 향하는 또 다른 상징인 케이블카도 존재감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환상적인 조명을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남산을 더 많은 시민들의 품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 현재 회현동과 명동 쪽 자락을 제외하고는 시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 채 도로로 단절되어 있는데 이를 시내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재정비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남산’에 대해 부분적인 디자인적 접근이 아니라 총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남산을 구석구석 살펴서 기능적으로는 쉽게 접근하는 휴식처, 격식을 갖춘 고급스러운 장소, 카페처럼 활기찬 공간 등을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전시관이나 역사기념관같이 엄숙하면서 무게 있는 공간은 어떻게 재현할지 등등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차량 위주로 계획되었던 도로 경계와 접근 방법도 사람 위주로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넘치지 않으면서 개성 있어야 감동

요즘 ‘스타일’이란 말이 유행인데 감동을 주는 스타일이란 넘치지 않으면서 개성이 있어야 한다. 남산은 서울만의 스타일로 태어나고 진화해야 한다. 개별적으로는 명품 디자인일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조화가 안 되면 촌스러워진다. 개인적으로는 ‘스마트’와 ‘힐링’을 남산 프로젝트의 콘셉트로 삼으면 어떨까 한다. 산책로를 걸으면서 힐링을 하고 역사관이나 편의시설에서는 ‘스마트’한 분위기를 접하는 것이다. 세계인들에게 주목받는 ‘남산 스타일’을 기대해 본다.

김억 홍익대 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