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지음·최완규 옮김704쪽·2만5000원·시공사
조상도 같고 먹는 음식도, 듣는 음악도, 풍습도 같다. 하지만 담장을 경계로 나뉘는 남쪽 멕시코 소노라 주의 노갈레스(위)는 도로망도, 법질서도 엉망이다. 소노라 주 노갈레스 시 언덕에 위치한 로사리토 마을엔 전기는 들어오지만 상수도가 설치돼 있지 않아 주민들이 매번 시내로 나가 5갤런(약 19L)들이 주전자에 식수를 담아 트럭에 싣고 온다. 반면 담장 이북의 미국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 시 주민들은 전기, 상수도는 물론이고건강보험과 같은 공공보험, 교육제도 등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조건 없이 받고 있다. 시공사 제공
북쪽 주민들은 연평균 가계수입이 3만 달러 이상, 성인 대부분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노인 상당수가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공공건강보험) 수혜자다. 반면 남쪽은 멕시코 안에서는 비교적 잘사는 편이라지만 평균 가계수입은 북쪽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 수두룩하며 영아 사망률도 높다. 한쪽에서는 국가로부터 제공되는 공공서비스가 당연한 국민의 권리인데 담장 너머 다른 곳에서는 뒷돈과 부패로 얼룩진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치안 수준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무엇이 노갈레스의 운명을 둘로 나눴을까. 멀리 갈 것 없다. 휴전선으로 두 동강 난 한반도의 상황은 노갈레스 사례를 능가한다. 1인당 국민소득, 건강상태, 평균수명까지 두 곳이 빚어낸 다른 삶의 모습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경제 제도와 정치 체제를 받아들였는가, 즉 선택의 문제다.
이 책이 말하는 인센티브는 국가가 발전하기 위한 초석임과 동시에 실패의 굴레를 벗는 열쇠이기도 하다. 저자는 총 15장에 걸쳐 국가 간 빈부가 생기는 원인을 경제사적인 측면에서 꼼꼼하게 살펴본다. 물론 우리에게 가장 눈에 띄는 장은 한반도의 경제상황을 비교한 3장 ‘번영과 빈곤의 기원’이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발생한 제도적 차이에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나뉘게 된 것을 설명하는 일반 이론의 모든 요소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북한 경제의 패인은 한마디로 주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유인, 즉 인센티브가 체제 내에서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한 국가와 선순환 논리의 사례가 영국과 미국 위주라는 점, 실패의 전형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지목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서구 중심주의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왕정 붕괴와 다원적 정치 제도로의 발전 덕분이고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은 착취적인 정치 제도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착취적 제도는 영국과 같은 식민열강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저자 역시 이를 지적하고 있지만 그런 외부적 요소보다 내부적 요소를 더 부각시킨다.
이미 성공한 서구 국가들의 정치 제도 변혁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었고, 실패 국가로 분류되는 빈국의 경제 악화는 과연 외부(특히 영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와는 상관없는 내부의 이권다툼 때문인 걸까.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성공 국가의 씨앗’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