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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강명]‘말춤’ 행정

입력 | 2012-10-08 03:00:00


싸이는 멋있고 자랑스럽다. 글로벌 스타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 나가서도 당당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도 쿨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솔직히, 한국의 정부기관이 싸이를 대하는 태도는 너무 호들갑스러운 것 같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 준 예가 4일 서울광장에서 있었던 ‘서울시와 함께하는 싸이 글로벌 석권 기념 콘서트’ 아니었나 싶다. 공연 제목부터 싸이의 세계적 인기에 올라타려는 서울시의 의도가 물씬 풍긴다.

▷싸이가 2일 콘서트에서 서울광장 공연 추진 의사를 밝히자 서울시는 다음 날인 3일 ‘유쾌한 서울시, 유쾌한 싸이의 요청에 응답하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서울시는 “‘국제가수 싸이’가 공개적으로 요청한 서울광장 콘서트 추진에 대해 적극 협조”하기 위해 원래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4, 5일 열릴 예정이던 스페인 공연단의 거리공연을 5일 하루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다시 이를 부랴부랴 5, 6일로 조정했다. “다양한 수상 경력과 예술적 우수함으로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대표 공연단체”(서울시 보도자료 설명)에 대한 이만저만한 결례가 아니다.

▷싸이 서울광장 콘서트는 무료 공연이었으나 이리저리 들어간 비용 4억 원은 서울시가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4억 원을 들여 수천억 원의 홍보효과를 봤다”고 하는데, 칭찬은 선뜻 나오지 않는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외국에 서울시를 알리기 위해 여는 행사인가? 싸이는 이틀 전에도 공연을 했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이,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인 싸이의 콘서트를 시민에게 공짜로 보여 주는 행사여야 할까? 그보다는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무대를, 시민에게 더 다양한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게 서울시가 해야 할 일 아닐까.

▷여성가족부가 싸이 노래에 내렸던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을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사실이 아니길 빈다. 싸이가 자랑스러워도 이런 호들갑은 지나치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이 가수의 인기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싸이의 말춤은 좋아하지만, ‘말춤 행정’은 촌스럽다. 싸이는 서울광장에서 단독으로 콘서트를 연 1호 한국 가수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은 제2의 싸이, 제3의 싸이의 출현을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