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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관 1시장, 전통시장 가는 날]교육과학기술부-서대문 영천시장

입력 | 2012-10-09 03:00:00

‘교과부 쿠폰’ 들고 회식&쇼핑… 상인들 “단골 오셨네” 함박웃음




“전통시장의 따스한 마음을 품고 돌아갑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달 21일 교육과학기술부 김응권 제1차관(가운데)과 150여 명의 직원은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을 방문해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를 벌였다. 교과부는 ‘영천시장 전용 쿠폰’까지 만들 정도로 전통시장 활성화에 관심이 많다. 교육과학기술부 제공

“와, 교과부에서 또 오셨네요! 오늘은 부서 회식인가요?”

추석을 앞둔 지난달 21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주위가 시끌벅적해졌다. 검은 양복과 정장을 착용한 ‘화이트칼라’ 150여 명이 인근 영천시장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광경이 어색할 법도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전형적인 단골 고객의 일상적인 방문 모습이었다.

광화문 앞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직원들은 지난해 7월 이후 두 달에 한 번씩은 영천시장으로 퇴근한다. 사무실에서 인접한 낙후된 전통시장을 선정해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한편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부서별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7월 28일 정부의 서민경제 활성화 취지의 일환으로 교과부도 인근 영천시장과 자매결연 관계를 맺었습니다. 교과부가 먼저 시범을 보이자 이후 전국의 시도 교육청에서도 인근 전통시장과 활발한 교류를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김응권 제1차관)

이후 교과부는 두 달에 한 번씩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약속된 금요일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장으로 향하는 것. 1인당 3만 원까지 지원되는 맞춤형 복지비를 활용해 전통시장 전용 상품권을 구입해 장을 보거나 부서회식을 함께하고 귀가하는 방식이다.

‘공무원 조직’답게 제도 운영의 꼼꼼함도 빛을 발했다. 단순하게 직원들에게 상품권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자매결연 시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했다.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교과부에서는 특정일에 오로지 영천시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쿠폰’을 제작해 운영한 것이다.

복지비 활용처가 전통시장으로 고정되자 알뜰한 교과부 공무원들은 퇴근시간을 활용해 영천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숫자만 해도 지난 1년간 600여 명에 달한다. 전통시장을 빈번히 오가게 되면서 교과부 직원들의 전통시장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박경수 교과부 운영지원과장은 “막연하게 깨끗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관심을 갖고 접해 보니 예상보다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면서 “교과부는 물론이고 전국 교육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면 (전통시장 지원 운동의) 파급력이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 같은 세심함에 영천시장 상인들은 “일회성 지원을 하는 기관들이 태반인데 잊지 않고 자주 찾아주는 교과부 직원들의 정성이 눈물나게 고맙다”고 입을 모은다. 교과부 쿠폰을 손에 쥔 이들을 ‘귀한 단골’로 대접하는 것도 시장 상인들 간에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

교과부 직원들을 포함한 정부부처 공무원들의 빈번한 시장 방문은 영천시장 상인들에게도 큰 자부심으로 작용했다. 1950년대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영천시장은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등록시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퇴락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달라진 사회적 관심에 용기를 얻어 다시 도전한 끝에 지난해 등록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법률적 보호를 받게 되면서 전통시장 전용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 유통도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현대화 사업의 진행을 위한 초석을 놓은 셈이 됐다.

교과부의 영천시장 방문은 장관이나 제1차관이 직접 ‘인솔자’ 역할을 한다. 이날 교과부를 대표한 김 차관은 시장 상인회 관계자들에게 “교육공무원들은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서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로 거듭나는 시장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 판자촌 서민 애환 서린 곳… 식자재 명성은 여전 ▼


■ 서대문 영천시장

“1987년까지 서대문형무소가 운영되던 시절에 (출소자를 위해) 두부를 사서 나르던 곳이 바로 여기 영천시장이에요. 그때가 정말 전성기였는데….”

조선시대만 해도 이 일대는 서울 서북쪽 무악재를 넘나들던 사람들이 떡을 사먹던 ‘떡전거리’로 유명했다. 지금의 영천시장은 일제강점기 서대문구 안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자그마한 개울가 판자촌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처음엔 지명에 따라 ‘관동시장’으로 불렸다. 일제는 조선시대 청나라 관리들을 접대하는 모화관이 있다고 해서 지금의 독립문 자리에 ‘관동(館洞)’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6·25전쟁 와중에 목조시장이 전소되고, 동네 이름도 영천(靈泉)동으로 바뀌었다. 독립문 공원 뒤에 있는 금화산의 약수가 효력이 있다고 해서 이런 지명이 붙은 것이다.

이평주 상인회장(57)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기대 부근에서부터 박완서 선생의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등장하는 현저동까지 온통 판자촌이었다”면서 “그런 서민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삶의 터전을 꾸린 곳이 바로 이곳 영천시장이다”라고 설명한다.

서민 주거지역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식자재가 유명했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가 이전하고 독립문 일대가 개발에 뒤처지면서 시설의 노후화와 편의시설 미비로 고객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외면도 계속됐다.

그런데도 예전의 전통은 끊어지지 않아 지금도 순대와 떡볶이, 튀김과 반찬가게 등은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식자재 가게들은 서울시 전역에 납품할 정도로 성공을 이뤘다. 2000년대 이후 노점을 포함한 220여 곳 상인들이 상인회를 재정비하고 독자적으로 비가림 천막을 설치하는 등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해왔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토지소유자들의 반대로 등록시장 허가가 늦어지기도 했지만 서대문구의 유일한 전통시장으로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근래에는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늘고 있다. 최근 상인회는 시장과 이어져 있는 서울시 소유 어린이공원을 주차장으로 전환해달라고 청원하고 있다. 시장 명칭도 ‘독립문시장’으로의 교체를 검토 중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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