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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시인과 정치

입력 | 2012-10-09 03:00:00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방송극에 나온 이후 청소년 사이에서 널리 애송되기 시작한 안도현의 시다. 안 시인은 일상의 작고 하찮은 것에서 소재를 찾아 감동을 주는 시를 썼다. 그가 얼마 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더니 4·11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과 함께 문 후보의 멘토단을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두 시인이 포함된 멘토단 37명 중 31명이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문학계 인사다.

▷안 시인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다. ‘접시꽃 당신’의 도 시인 역시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지냈다. ‘고양이 학교’라는 아동 판타지 소설을 쓰기도 한 김진경 시인은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원로뻘의 신경림과 정희성 시인은 둘 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는 김두관 후보를 지지했다가 이번에는 문 후보의 멘토로 이름을 올렸다. 그 밖에 일반인에게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 13명이 더 있다.

▷미국 정치는 선거 때 할리우드 스타들의 도움을 받는다. 얼마 전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공화당 밋 롬니 후보의 유세장에서 빈 의자를 세워놓고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신랄히 비판해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는 사실 공화당보다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가수 레이디 가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조지 클루니 등이 민주당을 지지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연예인은 유명하니까 정치가 그 이름을 빌리려 한다. 그러나 문인의 인지도는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고는 초라하다. 시인들이 보잘것없는 인지도를 이용해 특정 후보의 지지를 유도하는 모습은 시인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시인이 정치에 참여하고 싶으면 시로써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시인이 시로써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즉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을 때 시인은 정치에 뛰어들거나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다. 유신 시절의 저항 시인 김지하가 그랬다. 그런 시절은 지났다. 시인에게 혁명가는 몰라도 현실 정치인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에게 ‘근조(謹弔)’라는 리본이 달린 화분을 보낸 사람의 생각도 아마 그럴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