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 협연 수원시향 연주회 ★★★★☆
수원시향과 협연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여성이거나 몸집이 작은 피아니스트들을 테크닉 문제 이전에 물리적 제한으로 옥죄는 이 난곡을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30회 대한민국국제음악제에서 자유자재로 요리해 감탄을 자아냈다. 그는 눈앞의 벽을 돌파하고 각성하는 데 열중해 청중을 안중에 두지 않는 연주자들과 달리 우리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자기의 영역에 억지로 끌어들이는 것도 아니었고, 반대로 친절하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었다. 청중과 연주자 사이에 놓여 있는 경계를 완전히 개방해 작곡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 그리고 청중의 마음을 하나로 동기화했다.
그 덕분에 라흐마니노프가 흉중에 품고 있던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 참을 수 없는 우울과 거대한 환영이 출렁이는 음악의 능선을 따라 번갈아 고개를 내밀며 속 깊이 다가왔다. 느긋한 페이스의 1악장 전반부에서 군데군데 우아함까지 엿보였다가, 긴 ‘오시아’ 카덴차에 이르러 무아지경에 빠져들며 포화 직전까지 뜨겁게 타올랐다. 2악장과 3악장도 분방하고 아름다웠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오히려 기운이 나는 듯했다. 마지막 정점의 순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구름과 번개를 불러일으키는 손열음의 열 손가락에 환성을 질렀다. 지휘자 김대진과 함께 연주한 드보르자크 슬라브 무곡 2번과 쇼팽 연습곡 Op.10-3은 지나간 아련한 옛 기억을 더듬게 하는 앙코르였다.
이영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