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한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불소(F)가스는 인체에 치명적인 가스다. 불소화합물인 불산(HF)은 독성이 강한 강산으로 반응성과 부식성이 강해 인체에 대단히 유해하다. 불소가스와 불산은 암석과 광물을 녹일 정도로 강한 화학적 특성을 지닌다. 이 때문에 과거에 불소가스 분리 연구를 하다 많은 과학자가 희생됐다. 프랑스 화학자 앙리 무아상은 불소가스를 1886년 처음으로 안전하게 분리한 성과로 190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불소가스와 불산은 잘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불소가스와 불산이 들어 있는 수소원자를 불소로 치환해 만들어진 불소화합물은 화학적으로 안정적이고 무해하다. 내열성과 내약성도 뛰어나다. 그래서 불소를 함유한 테플론 재질의 합성수지가 전기밥솥, 프라이팬 등 각종 가전제품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액체 불소함유 유기화합물은 인공 혈액으로 사용되며 고분자 세정제, 냉매제로도 널리 쓰인다. 불화수소나트륨 수용액은 충치 예방제나 구강 보호제로 사용된다.
이 같은 유독성 가스나 강산은 직접 피부에 닿지 않도록 피하는 게 최선이다. 불산이나 불소가스에 노출됐을 때는 신속히 그 지역을 벗어나 맑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노출 부위를 물로 씻고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사고 발생 12일째인 8일에야 구미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누출 가스의 유독성이 심각한 만큼 발생 직후 즉각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곧바로 주민과 가축을 모두 안전지대로 대피시켰어야 했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 없다 해도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일어난 즉시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고려하는 등 기상조건을 감안해 주변 지역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하고, 예상피해 지역 주민 역시 즉각 안전지대로 대피시켜서 2차 피해를 줄여야 한다.
향후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지역이나 실험실에는 유해가스 자동 감지장치를 반드시 설치·운영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10여 년 전 미야케지마 화산이 분화한 뒤로 유해가스 자동 감지장치를 화산 지역에 설치해 화산가스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 안전 기준치를 넘는 유해가스가 발생할 때는 지역 주민들에게 자동 경고 방송으로 사전 대피를 유도하고 있다. 유해화학물질 사용 및 취급 기관은 철저한 유해물질 기초과학교육과 안전교육, 대피요령, 취급 관리지침을 재점검해야 한다. 이번 사고는 유해물질 관련 사회 안전망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린 값진 경고음이다.
김규한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