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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이죄수주 인불원상(以罪受誅, 人不怨上)

입력 | 2012-10-12 03:00:00

以: 써 이 罪: 허물 죄 受: 받을 수 誅: 벨 주
人: 사람 인 不: 아니 불 怨: 원망할 원 上: 위 상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경우엔 어떤 벌을 받더라도 벌 준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로 한비자 ‘외저설좌하’ 편에 나온다.

공자가 위(衛)나라의 재(宰·지방 장관)로 있었을 때, 제자인 자고(子(고,호))가 옥리로 있었다. 어떤 죄인을 발목 자르는 형에 처했다. 발목을 잘린 죄인은 문지기가 되었다. 이 무렵 공자를 군주에게 모함하는 자가 있어 군주는 공자를 체포하려 했다. 공자와 제자들은 도망을 쳤다. 자고도 뒤늦게 문을 나가려고 했지만 포졸이 쫓아오는 상황이었다. 이때 발목을 잘린 문지기가 나타나서 자고를 지하실에 숨겨 주었다. 포졸은 자고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밤중에 자고가 그 문지기에게 자신이 발을 잘랐는데 왜 복수하지 않고 보호해 주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 문지기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발이 잘린 것은 내가 범한 죄에 상당한 것이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처벌할 때 법령을 여러 번 조사하였고, 더욱이 나를 구제해 주고자 마음을 써 주었습니다. 판결이 내려지고 형벌이 확정되었을 때 당신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인정 때문이 아니라 천성적인 인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형을 집행당하면서도 당신을 훌륭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한비자 ‘외저설좌하’ 편)

자고가 살아남게 된 것은 오히려 냉정한 법 집행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죄를 범한 자에게 그에 상당한 형벌을 내리지 않는 윗사람이라고 해서 죄를 지은 자가 자애롭다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연스레 상을 주면서 생색을 내거나, 벌을 주면서 마음속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처신한다. 곡식을 공평하게 나누는 도구인 두(斗)가 있듯이 죄에 대해 공평하게 집행하는 법(法)이라는 것이 있어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잡히게 된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