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정성희]대학원생 ‘노예’

입력 | 2012-10-12 03:00:00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이란 썰렁 개그가 있다. 정치인은 코끼리에게 뇌물을 주어 냉장고에 들어가게 한다. 경찰은 코끼리를 고문해 ‘닭’이라는 자백을 받은 뒤 들여보낸다. 수학자는 코끼리를 미분해서 냉장고에 넣는다. 페르마 버전도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을 발견했다. 그런데 여백이 좁다.” 여백이 좁아 정리를 적지 않았다는 수학자 페르마의 일화에서 비롯된 얘기다. 대학교수에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라고 하면 답은 “대학원생 조교에게 시킨다”다.

▷‘유한마담에게 교수가 인기 있는 이유’라는 유머도 있다. 시간이 많아서 언제라도 만나자고 하면 나온다. 만나면 하나라도 배울 게 있다. 직접 나오지 못하면 조교라도 보낸다. 웃자고 하는 소리이니 교수님들은 오해 마시길. 이런 우스개가 담고 있는 일면의 진실에 마음이 싸해진다. 외국에서 온 교수들은 한국의 대학원생과 조교에게 대학교수가 거역할 수 없는 절대 권력자인 현실을 보며 의아해한다.

▷서울대 인권센터가 대학원생 1380명을 대상으로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에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폐해를 조사한 결과 41.6%가 교수의 부실한 수업준비로 학습 연구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응답했다. “교수나 선배의 논문을 대필했다”는 경우가 16%였고 28.1%는 “강제로 행사에 동원됐다”고 밝혔다. 지도교수가 싫어하는 교수의 강의를 못 듣게 하거나 특정 과목 수강을 강요하는가 하면 논문지도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조교가 설거지, 장보기, 세탁물 찾아주기는 기본으로 하고 교수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 봐주거나 원치 않는 술자리에 동행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서울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몇 년 전에는 한 여자대학 교수가 조교에게 자기 집 목욕탕 청소를 시켜 물의를 빚었다. 심심찮게 일어나는 성희롱도 남자 교수와 여자 대학원생의 일방적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교수가 논문 통과와 교수 임용에 전권을 쥐고 있을 뿐 아니라 같은 학문을 하는 이상 그 분야에서 한번 밉보이면 발붙이기가 힘든 시스템이 전근대적 악습을 낳고 있다. 교수들은 “나도 조교 시절에는 그랬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이 그랬다고 해서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이런 폐습과 단절할 때가 됐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