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죽음에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
고윤석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
우선 우리 사회에서는 ‘존엄사’라는 말 자체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존엄사라고 말할 때에는 의사가 직간접으로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적극적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은 포함시키지 않아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에 반대하는 여론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다 보니 우리도 제도 측면에서 이미 존엄사 관련 지침을 준비해 놓고 있다. 2009년 대한의학회가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 그 가족과 의료진이 합의해 환자에게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 생명연장 특수치료는 미루거나 중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명치료중지지침’을 마련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 몇몇 병원 의사들은 이 지침을 참조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환자나 가족이 내리는 결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만약 가족과 의료진 간에 의견 차가 클 경우 병원 내에 병원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제3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 시행되고 있지 않다. 2011년 내과 4년차 수련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56%)정도만 이 지침을 알고 있었고 지침을 안다 해도 실행하는 것은 11%에 불과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생명연장치료 중지를 결정하도록 권고했을 경우 의사가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국회에서 발의된 존엄사 관련 법들도 좀 더 치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에서는 환자의 ‘사전의료의향서’를 치료 중지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과정에서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기는 매우 어렵다. 중환자의 경우 사전의료의향서를 통한 자기결정권 행사는 서구에서도 잘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생명에 관한 것들이라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더구나 우리는 서구에 비해 ‘가족 속의 나’라는 문화가 강하다. 환자 혼자 주장을 펴기보다 가족이 뜻을 대변해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이다. 따라서 만약 환자가 직접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가 없다면 연명치료를 중지하지 못한다고 법에서 규정한다면 의료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매우 커질 것이고 임종 환자의 고통은 연장될 수 있다.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죽음의 과정에 대한 논의가 생명 경시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으나 나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태어나면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당사자의 뜻이 반영된다는 것은 생명경시가 아니라 생명존중이다. 웰다잉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날로 높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관련 정책들을 만들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또 생명과 죽음에 대한 학교 교육이 보완돼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죽음의 과정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회 문화도 필요하다.
고윤석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
:: 필자 소개 ::
한양대 의대를 나와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내과학 전공)를 받았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실장을 맡고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 “결국 돈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자” ▼
신동일 한경대 법학부 교수
그런데 말로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해야 한다’, ‘존엄사를 찬성한다’고 하지만 ‘돈’이 핵심 문제라는 생각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동원되는 논리가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다. 즉 환자가 생명연장치료를 거부하면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렇다면 자살은 어떤가?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중환자보다 훨씬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자기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결정권의 실질적인 행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명시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행동을 보장해야 하는가? 아마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모순이 생긴다. 죽음을 앞둔 중환자의 자발적인 생명 포기 의사는 존중하면서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의사는 왜 존중하지 않는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죽음의 문제는 겉으로 말하는 그럴듯한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중요한 삶의 본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나 평등은 단순한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문제다. 우리 헌법은 시민의 생명을 차별하지 않는다. 생명은 그 자체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2009년 대법원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할머니의 생명연장치료 중단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최초의 존엄사 판결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판결을 통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에 대해 거부권이 인정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오해다. 판결문에서도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판단하라’고 했다. 아울러 당시 대법관들의 소수의견으로 생명이 대상이 되는 경우는 처음부터 자기결정권이 적용될 대상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었다. 모든 인간 생명의 보호 원칙은 분명하게 헌법과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존엄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예를 많이 들고 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본인 동의에 의한 생명 포기를 법률로 허용하고 있으며 스위스의 ‘디그니타스’같은 단체는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법적 의료적으로 조언해 주고 실제 안락사 과정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외국의 사례들은 마치 존엄사가 그 사회에서는 논란의 여지없이 합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여전히 존엄사가 생명윤리법 분야에서 핵심 쟁점이며,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는 지속적으로 범죄 유사 단체로 비난받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률을 가진 국가들의 의료 및 사회보장 시스템과 우리 시스템의 차이도 무시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인구는 1600만 명으로 우리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국가 예산(2010년 기준)은 우리보다 무려 150조 원을 더 쓴다. 그중 사회복지 예산 비율은 46% 정도여서 우리 복지예산 비율 27%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생명연장치료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진료비는 국가 부담이다.
의료혜택을 받을 때 개인 부담이 거의 없는 나라들과 우리처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나라와는 엄연히 다르다. 다시 말해 앞서 예로 든 나라들에서는 최소한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해야할지를 고민할 때 경제적인 고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 중단 논란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가 강조되기보다 자기 부담이라는 의무가 강조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존엄사를 법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 생명의 문제가 사회적 비용 계산에 의해 결정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예외의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입법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신동일 한경대 법학부 교수
:: 필자 소개 ::
인천대 법학과를 나와 고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괴팅겐대에서 형법 및 의료법연구소 박사후 과정을 마쳤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