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쑥부쟁이 잎 끝은 톱니모양, 벌개미취 잎은 밋밋
벌개미취 꽃(오른쪽)은 쑥부쟁이 꽃보다 풍성한 느낌을 준다(위쪽 사진). 산국은 원예용 국화나 감국보다 곷이 작다. 이병윤 박사 제공·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안도현 ‘무식한 놈’
오랜만에 나선 산책길. 딸이 묻습니다. “아빠, 저 꽃은 뭐야?” “으응, 그거….” 한참 뜸을 들이다 답합니다. “그거, 들국화야.” 추가 질문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좀 찜찜합니다. 식물에 대해 잘 안다고 딸아이 친구들 앞에서 폼을 잡았던 아빠가 가을에 지천으로 피는 들국화 앞에서는 도통 어쩔 수가 없으니까요. 사실 온통 비슷하게 생긴 꽃 천지 아닌가요?
독자 여러분께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래서 오늘은 소위 들국화로 불리는 식물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를 알아봤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이병윤 박사님과 ‘O₂’에 ‘꽃과의 대화’를 연재 중인 국립종자원 서정남 박사님께서 도움말을 주셨습니다.
국화과 식물은 그 수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흔한 식물은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감국, 산국 등 5가지에 불과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5가지만 구분할 수 있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구분은 생각보다 무척 쉽습니다. 일단 꽃이 흰색이면 구절초, 연보라색이면 쑥부쟁이일 확률이 큽니다. 드물게 연분홍색 구절초나 흰색 쑥부쟁이도 있는데요. 그럴 땐 잎의 모양을 비교해 보세요. 구절초 잎은 쑥 또는 국화를 닮았고, 쑥부쟁이 잎은 길쭉하게 생겼습니다. 구절초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 무렵에 뿌리부터 꽃까지 9마디가 된 것을 잘라 쓴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벌개미취 잎(왼쪽), 쑥부쟁이 잎
이번에도 가장 확실한 것은 잎 모양 비교입니다. 쑥부쟁이 잎은 가장자리에 톱니 모양이 있고, 벌개미취 잎은 가장자리가 대체적으로 밋밋한 느낌입니다. 단, 쑥부쟁이 잎도 위쪽에 있는 것은 톱니 모양이 잘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니 뿌리에 가까운 큰 잎을 관찰해보는 게 좋습니다.
○ 신선이 되는 약, 국화
감국(甘菊)과 산국(山菊)은 두 가지 모두 노란 국화꽃의 모양입니다. 옛 사람들은 여러 가지 국화 품종 중 감국의 꽃으로 약과 차, 술을 만들었습니다. 감국은 맛이 달아 식용할 수 있거든요.
중국 의학서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국화를 상약(上藥)의 하나로 쳤습니다. 옛 사람들은 국화를 신선이 되는 약이자 연년익청(延年益靑), 즉 수명을 늘리고 회춘을 불러오는 효능이 있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감국에는 항노화물질로 유명한 셀레늄이란 미량원소가 들어있습니다. 신농본초경은 120가지 약물을 석(石)부와 초(草)부, 목(木)부로 나눴는데, 감국은 초부 랭킹 2위의 약물입니다. 초부의 1위는 석창포, 3위는 인삼이랍니다.(신동아 2012년 3월호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신선이 되는 약의 으뜸 국화’ 참조)
참, 감국과 산국의 구별법을 잊을 뻔했네요. 감국의 꽃이 산국의 그것보다 큽니다. 감국 꽃(약 2.5cm)은 500원짜리 동전만 하고 산국 꽃(약 1.5cm)은 요즘 나오는 10원짜리 동전과 비슷합니다. 저희 회사 앞 청계천에 나가 보니 구절초와 쑥부쟁이, 벌개미취 3가지가 모두 있더군요. 이번 주말, 가족과 함께 들국화 구경을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