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2011년) 》
술을 마시고 난 다음 날이면 숙취보다 전날 밤 내가 떠들었던 얘기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어떤 얘기들은 몇 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아 자다가 이불 여러 번 걷어차게 만들었다. ‘오늘은 떠들지 말고 얌전히 술만 마셔야지’라는 결심도 별 소용이 없었다. 알코올과 그 약리작용이 아니라 나 자신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자제력을 살짝 무너뜨리는 역할만 했다. 그러면 금이 간 제방에서 강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자아(自我)가 쏟아져 나왔다. 작은 그릇 속에서 탈출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거대한 에고가. 남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여드름쟁이 15세 소년이.
첫 번째 아이러니는, 그런 심리가 건강한 자신감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15세짜리 소년만큼 남의 눈을 의식하는 인간도 없기 때문이다. 딱하고 애처롭다.
‘미쓰 홍당무’(2008년)의 양미숙 선생(공효진)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을 저지르는 걸까. 그가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라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기 때문에? 아니다. 영화 뒷부분, 양 선생이 서종희(서우)에게 하는 말에 답이 숨겨져 있다. “나는, 내가 창피해.” 그는 자의식이 너무 크고 자존심이 세서 그런 짓을 해온 거다.
두 번째 아이러니는,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자아를 배려하는 문화(분위기)가 늘어날수록 구성원 개개인은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기회를 잃는 것 같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도로 사정이 좋아지고,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디자인은 점점 더 멋있어지는데, 차의 내구성은 점점 더 약해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어지간한 정신의 정면충돌에도 ‘탑승자’가 큰 내상을 입지 않았는데, 요즘은 사소한 접촉사고에도 그 안의 멘털이 쿠크다스 과자처럼 부서진다(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다 차에서 내려서 흘끔흘끔 그 광경을 구경한다―아닌 척하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자기를 잊어버리고 살고 싶은가? “난 꽤 오랫동안 엄마, 집사람으로만 살았거든”이라고 말하는 ‘써니’(2011년) 속 어른 나미(유호정)의 모습이 덜 애처롭고 더 바람직한가? 아니다. 자의식이 흘러넘치는 삶은 우스꽝스럽지만, 자의식이 없는 삶은 삶이라 부를 수가 없다.
8월에 술을 끊었다. 퇴근 뒤 집에서 불 끄고 혼자 마시는 맥주도 독하게 마음먹고 끊어버렸다. 술을 줄이는 건 할 수 없었고, 끊는 것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극단만 오가는 것도 유치한 성격 탓이고,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회피한 거라고 지적받아도 할 말은 없다. 넘치는 자의식을 당장 어찌할 수는 없으니 가면이라도 튼튼한 걸 쓰고 살겠다.
tesomiom 남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37세 지성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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