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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온정을 절도로 갚은 ‘장발장’ 노숙인

입력 | 2012-10-13 03:00:00

30만원 생활비 줬던 교회 등 6곳 돌며 1100만원어치 훔쳐




7월 중순경 정모 씨(25)는 “배가 고프다”며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한 교회를 찾았다. 교회 목사는 밥을 내주고 “나중에 밥 사먹어라”며 용돈 30만 원까지 줬다. 젊은 나이에 노숙인으로 떠도는 것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사의 따뜻한 마음은 보은(報恩) 대신 절도로 되돌아왔다. 3주 뒤 정 씨는 다시 이 교회를 찾아 관리인이 없는 틈을 타 사무실에 놓여 있던 노트북과 서랍 속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정 씨는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서대문구 종로구 도봉구 등의 교회와 성당 6곳을 돌며 9회에 걸쳐 모두 11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전문 절도범이었다. 이 교회들은 정 씨가 배가 고프다고 찾아가면 음식을 내줬던 곳이다. 정 씨는 낮에 교회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면 나와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 등을 훔치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다.

정 씨는 9일 지난해 교회에서 물건을 훔쳤던 절도범과 비슷한 사람이 교회 근처를 배회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그는 교회 3층에 있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정 씨에 대해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2일 밝혔다. 무전취식, 절도 등 전과 18범인 정 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하기 싫어 계속 노숙생활을 해왔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