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일진 없앤다더니 전쟁은 우리가 해요”피해자 인터넷 카페서 왕따탈출 상담 나선 고교생 4인 분투기
덥수룩한 머리, 여드름, 뿔테안경, 치아교정기 그리고 환한 웃음. ‘왕따 저항군’의 리더들은 여느 고등학생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하면서도 푸릇푸릇한 청소년들이다. 정소연 이윤석 김성준 조성희(왼쪽부터) 등 ‘왕따들의 모임’ 인터넷 카페 운영자들이 2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모여 카페 화면을 스마트폰에 띄워 보이고 있다. 윤석이를 뺀 나머지 3명은 아직 왕따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얼굴을 가렸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왕따들의 모임(왕모)’ 카페는 저항군의 전진기지다. 2006년 처음 생겨난 이 기지에서 윤석이와 친구들은 전국에서 모인 이름 없는 왕따들과 함께 탈출 전략을 짠다. 하지만 하루 이기면 다음 날은 지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사실을 믿기 위해 발버둥치는 분투로 채워져 있다.
○ ‘왕따 저항군 리더’의 바쁜 하루
아침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왕모 카페에 들어가 회원 수를 확인한다. 매일 조금씩 늘어 이제 1283명이다. “힘을 합쳐 왕따에서 탈출하고 싶어요”라는 신입의 글에 ‘환영한다’고 댓글을 남겼다. 카페 아이들은 영화 ‘터미네이터’의 로봇 군단에 맞서는 인간 저항군과 닮았다.
윤석이는 자신이 다니는 경기 구리시 S고등학교에서 보조상담가로 봉사활동을 한다. 선생님이 상담실을 비우면 윤석이가 친구들을 맞이한다. 친구들은 윤석이가 중학교 때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왕따인 친구들은 윤석이를 더 믿는다.
집으로 돌아가 스마트폰을 열면 하루 동안 카페 친구들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쏟아진다.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을 걸어 달라”며 카페에 연락처를 남긴 뒤부터 매일 2, 3명이 윤석이를 찾는다. ‘와이파이 셔틀(스마트폰의 핫스폿 기능을 항상 켜 놓아 일진이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하는 것)’로 찍혔다고 하소연하는 친구에게 요금 명세를 저장해 신고하라고 조언하다 보면 날이 어두워진다.
밤이 깊어지면 카페의 ‘죽음 or 생명’ 게시판을 꼼꼼히 본다. “괴롭힌 아이들을 차례차례 찌르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거친 글들이 올라온다. 윤석이는 하나하나 댓글을 남긴다. 기껏해야 “힘내라, 나도 똑같았다”는 댓글이다.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윤석이는 힘없는 왕따들이 일진 ‘터미네이터’에게 반란을 일으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말 붙이는 친구가 없어서 심심한 게 다였다. 그런데 친구 없는 아이로 찍히자 소연이는 ‘노는 아이들’의 표적이 됐다.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으면 아이들은 가위로 소연이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소연이는 가위 소리를 듣고도 자는 척했다. 맞는 것보단 나았다. 괴롭히던 아이 한 명은 “집을 구경하고 싶다”며 쫓아와 소연이가 기르던 토끼를 집어던져 죽였다. 부모에겐 말하지 못했다. 일이 커지면 아이들이 복수할 것 같았다. 그때 ‘친구’라는 단어는 소연이에게 ‘악마’와 동의어였다.
사람을 피했고 혼자 있는 시간엔 인터넷만 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왕모 카페였다. 그곳엔 ‘또 다른 나’가 가득했다. 하소연할 곳 없는 왕따끼리 의지하며 괴롭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소연이는 그곳에서 처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열네 살이던 2010년, 소연이는 ‘반란’에 나서 봤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 카페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친구들은 소연이에게 피해 신고 요령을 알려줬다. 보복을 걱정하는 소연이를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나 “신고하지 않으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 소연이는 맞아서 생긴 상처의 사진과 아이들이 보낸 욕설 문자를 모아 학교에 알렸다. 카페 친구들이 조언한 대로였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고 그때 처음 딸의 상처를 안 엄마는 학교에서 울었다. 아이들은 소연이에게 사과하고 반을 옮겨야 했다. 아이들은 눈에서 멀어진 소연이를 더는 괴롭히지 않았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 때론 쉬운 듯, 하지만 어려운 왕따 극복
자해 사건 전 성희는 종종 왕모 카페에 소설을 써서 올렸다. 악마에게 시달려 목숨을 끊으려던 한 아이가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살아간다는 판타지였다. 반 아이들로부터 외면받았던 중학교 때의 경험을 녹였다. 카페 회원들이 “소설 덕분에 기운을 얻는다”고 댓글을 남기면 성희도 옛 기억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절교’라는 친구의 말과 함께 모든 기억이 유령처럼 부활했다.
성희가 처음 손목을 그을 생각을 떠올렸던 건 2009년 3월이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 바뀐 반에서 새 친구들과 잘 지내보려고 마음먹었지만 이미 왕따 소문이 퍼진 터라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성희는 이때 처음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마음에는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생채기가 생겼다. 올 7월 성희가 자해를 시도한 배경이다.
성희와 친구는 최근 화해했고 다행히 손목의 상처는 깊지 않았다. 소설도 다시 시작했다. 손목은 다른 친구들이 보지 못하도록 가리고 다녔다. 붕대를 풀 때쯤 담임교사가 성희를 불렀다. 성희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는 설문 항목에 체크해서였다.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성희를 돌려보냈다. 다음 날 반 아이들이 성희에게 몰려왔다.
“너 손목 그었다면서? 한번 보여 줘 봐.”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비밀을 말할 줄 몰랐던 성희는 다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힘을 내 카페 활동에 집중하고는 있지만 성희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은 요즘 “사라지고 싶다”는 대사를 자주한다.
○ “학교폭력과의 전쟁은 학생만 치르죠”
열여덟 살 성준이는 왕모 카페 친구들과 활발히 어울리지만 학교에선 왕따다. 학교 아이들은 2월에도 성준이를 때리고 욕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속으로만 앓았겠지만 이번엔 학교에 알렸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언한 학교에 기대를 걸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선생님은 조용히 성준이를 불렀다. 학교폭력을 공연히 문제 삼으면 반 전체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게 요지였다. 성준이는 수긍하면서도 “선생님들은 인사고과에 좋지 않을까 봐 폭력 신고를 받아도 쉬쉬한다”는 카페 친구들의 말을 떠올렸다.
반 아이들의 괴롭힘이 이어졌다. 성준이는 지난달 다시 용기를 내 학교에 알렸다. 성준이를 괴롭힌 아이들은 “폭력이 아니라 장난친 것뿐”이라며 빠져나갔다. 학교는 “폭력 증거가 없다”며 ‘구두 경고’ 조치만 내렸다. 성준이는 유치원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올해는 유난히 설문조사가 많은 해였다.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특별 설문조사, 2차 전수조사…. 첫 설문이 끝났을 때 선생님은 “설문지를 뒤에서부터 걷어 오라”고 했다. 피해 사실을 적은 성준이는 숨이 멎을 뻔했다. 설문지를 걷는 아이들은 성준이를 괴롭히는 패거리의 일원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성준이처럼 ‘일진에게 맞았다’고 적은 아이들은 몇 번이고 상담실에 불려갔다. 모든 학생은 누가 ‘밀고자’인지 알았고, 일진의 눈과 주먹은 다시 피해 신고 학생에게 집중됐다. 두 번째 설문부턴 성준이와 왕따 친구들 중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올해 3∼8월 학교폭력 가해 학생 1만7970명 중 3752명은 피해 학생에게 서면으로 사과했다. 사회봉사를 한 아이는 3076명, 특별교육은 2615명이다. 성준이는 성의 없이 갈겨쓴 사과문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일진들에게 봉사활동을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을 뿐이다. 피해 학생 1만2017명 중 일시보호 조치를 받은 아이는 1030명뿐이다.
성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상 편집 일로 돈을 벌어 ‘왕따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 왕모 카페처럼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쉬었다 가는 공간이다. 아직 이 생각에 동참하는 어른은 없다. 하지만 성준 윤석 소연 성희처럼 서로 기댈 친구가 있다는 사실 하나에 위로받는 많은 ‘왕따’는 오늘도 ‘반란’을 꿈꾼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채널A 영상] “끊기면 맞는다” 신종 학교폭력 와이파이 셔틀
▶ [채널A 영상] “자신감 찾았어요” 왕따 없앤 대안학교의 비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