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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늙기싫지만 오래 살고싶은 당신, 기나긴 노년을 직시하라

입력 | 2012-10-13 03:00:00

◇노년의 역사/팻 테인 등 7인 지음·안병직 옮김/504쪽·2만8000원·글항아리




독일 화가 크리스티안 자이볼트의 1768년 작품 ‘그린 스카프를 걸친 노파’. 그림 속 여성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름답다. 유럽에선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노인이 품위 있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글항아리 제공

“여섯 번째 시기는 슬리퍼를 신은 여윈 늙은이로 변한다. 사내다운 우렁찬 목소리는 어린애 목소리로 되돌아가 빽빽거리는 피리 소리를 낸다. 마지막 시기는 또 한 번 어린애가 되는 것, 오로지 망각이다. 이는 빠지고, 눈은 멀고, 입맛도 떨어지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희극 ‘뜻대로 하세요’에서 인생을 일곱 시기로 나눠 설명했다. 노년기에 속하는 여섯, 일곱 번째 시기에 대한 서술은 극히 부정적이다. 이는 고대 및 중세 서구문학 속 노인에 대한 묘사와도 일치한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사 속 노년의 역사를 다룬다. 책을 엮은 팻 테인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역사학 연구교수를 비롯해 유럽 중세 노인·여성·아동사 연구가인 슐람미스 샤하르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명예교수, 프랑스 혁명기 노년의 삶을 연구한 데이비드 트로얀스키 미국 브루클린대 역사학과 교수 등 역사학자 7인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르네상스, 근대, 20세기 이후 등 시대별로 노인의 삶을 조명했다.

우리는 “전통 사회에서 노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권위와 존경을 누렸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등 근대화를 거치면서 노인의 입지가 크게 축소됐다”고 생각한다. 이는 20세기 중엽 이후 노인학 연구를 주도한 사회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다. 하지만 역사 속 노인의 모습을 분석한 이 책은 이 같은 통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가족 제도의 중심은 ‘핵가족’이었다. 확대 가족의 정점에서 가족의 존중과 배려 속에 행복하게 말년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은 말 그대로 ‘신화’에 불과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노인은 잉여 인간으로 취급됐고 조롱의 대상이었다. 노인이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는 ‘노인 정치’ 체제 또한 서양사 속에서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그나마 노인 정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고대 스파르타의 ‘장로회의’에서조차 노인보다 젊은 관리가 더 큰 힘을 가졌다.

나이 든 여성은 남성보다 더 심한 홀대를 받았다. 14세기 프랑스 작가 기욤 드 데귈레빌은 저서 ‘인생의 순례’에서 자비, 자선, 참회, 근면 등의 미덕을 ‘젖을 먹이는 젊은 여성’으로 의인화했다. 반면 재난, 이단, 질병, 나태, 오만, 아첨, 위선, 질투 등 악덕은 추한 모습의 늙은 여성으로 표현했다. 여성이 나이가 들어 출산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기능을 상실해 더이상 존재 가치가 없는 사회 구성원으로 취급됐다는 걸 의미했다.

오히려 노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근대 이후 뚜렷하게 나타난 문화현상이다. 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 과학과 의학의 역할이 컸다. 20세기 이후에는 노인 스스로 늙음을 포용하고 긍정하기 시작했다. 노동시장에서도 육체적 힘보다 지적 능력과 노하우를 요구하게 된 이후부터 노인 노동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중을 위한 교양서와 학술서 중간에 위치하는 이 책이 쉽게 읽히진 않는다. 글보단 230컷이 넘는 도판이 서양사가 노년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한층 잘 설명한다. 책을 읽고 나니 동양 역사 속에선 노인이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궁금하다. 관련 연구가 이뤄져 동서양 노인의 역사를 비교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노년의 삶은 시대와 사회, 개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자립할 수 있는 노인만이 존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 경제력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18세기 말 독일 브란덴부르크 지역 일부 도시의 성문에는 “자녀에게 먹을 것을 의존하거나 가난에 시달리는 자는 이 몽둥이로 죽도록 얻어맞을 것”이라는 글이 새겨진 큰 몽둥이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자녀 결혼을 위해 재산 전부를 써버리고, 아이 교육에 월급을 몽땅 털어버리는 오늘날 한국인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려 할 때만 존중받을 것이다.”(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