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9일 오후 7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생활과학관 강의실. 한경혜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가 ‘100세 시대 인생대학’ 강의에 모인 은퇴 준비자에게 기대수명 계산법을 일러주고 있었다.
강의실에 모인 70여 명은 저마다 앞에 놓인 메모지에 자신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인지 셈하느라 분주했다. 기대수명 계산이 마무리될 무렵 강의실에 모인 이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 나는 아흔네 살까지 사네.” 계산을 마친 한 중년 여성이 번쩍 손을 들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한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흔네 살이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에요. 여기 기대수명 아흔네 살 이상으로 나오신 분 손 한 번 들어보세요.”
10명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다들 기대수명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 것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기대수명이 100세, 104세, 106세인 이들도 있었다.
한 교수는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보셨죠. 100세 시대가 더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충실하게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시면 은퇴 후 남은 40년을 허투루 보낼 수 있다는 거예요.”
이날 강의에 모인 이들은 만 45∼65세의 우리투자증권 VIP 고객들이다. 평균 금융자산만 7억 원에 이른다. 언뜻 생각하면 자산이 충분한데 은퇴 뒤 뭐가 불안하나 싶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인생대학을 다니며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금융업계에 종사하다 퇴직한 김모 씨(65)는 “은퇴 뒤 2년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마냥 집에서 시간만 보냈다”며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과 같이 대화도 하고 취미도 공유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 자아정체성 확립이 준비 첫걸음
이날 강연에서 한 교수는 ‘나이 듦’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 육체와 정신이 노쇠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나와 내 배우자만 늙는 게 아니에요. 누구나 출생과 함께 늙어가는 겁니다. 나 혼자만 늙는구나 생각하면 의기소침해지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나이 들어도 평소 생활하던 대로 살아가는 게 중요해요.”
한 교수는 전국을 돌며 만났던 100세 노인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제가 얼마 전 올해로 102세 된 할머니를 만났어요. 이 분은 아직도 아들과 매일 티격태격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들 나이가 아마 여든 살이었죠.”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의에 참가한 은퇴 준비자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한 교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기서 포인트가 뭘까요? 할머니는 아직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사러 슈퍼마켓에 가고, 소주를 사고, 숨기고, 가족과 실랑이를 하죠. 본인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평소 하던 걸 안 하기 시작합니다. 밖에 나가질 않고 원하는 걸 하지 않아요. 그럼 진짜 늙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정리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돌아보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되짚어 보는 게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지름길이라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서로 옆자리를 바라보라고 주문했다. “100세 시대에 미래를 대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큽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세요. 여러분 혼자만 늙는 게 아니거든요. 오늘 여러분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좋은 동료를 만난 셈입니다. 우리 모두 100세까지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강의실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