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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민동용]약물로 달린 사이클

입력 | 2012-10-15 03:00:00


얀 울리히(40)라는 은퇴한 독일 사이클 선수가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사이클 도로 경주 금메달리스트다. 그러나 이보다는 ‘사이클 황제’로 불렸던 미국 선수 랜스 암스트롱(41)의 그늘에 가린 불운한 선수로 더 알려졌다. 세계 최고의 도로 사이클 경주로 꼽히는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서 암스트롱이 7회 연속 우승을 한 1999∼2005년에 울리히는 준우승만 세 번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울리히를 진정한 스포츠맨으로 기억한다.

▷2003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서 울리히는 암스트롱에 이어 종합성적 2위를 달리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 뤼즈 아르디당 언덕을 올라가는 대회 막바지 구간. 환호하는 관객이 흔들던 작은 가방에 암스트롱의 자전거 핸들이 걸렸다. 암스트롱은 자전거와 함께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암스트롱을 바짝 뒤쫓던 울리히가 자전거를 세운 채 암스트롱이 일어나 자전거에 탈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 구간에서 울리히는 암스트롱에 40초를 뒤졌고 결국 종합기록에서 61초 뒤져 준우승을 했다.

▷며칠 전 미국 반(反)도핑기구(USADA)는 암스트롱이 꾸준히 금지약물을 복용했고 도핑테스트를 교묘하게 속였음을 드러내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울리히는 이 소식을 듣고 땅을 쳤을까. 그랬을 것 같지만은 않다. 울리히도 올해 2월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2005년 이후의 모든 기록을 박탈당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암스트롱이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를 할 때 그 대회 3위 안에 든 선수 중 금지약물을 복용하거나 추문에 휘말리지 않은 선수는 단 한 명뿐이다. 영광스러웠던 7년이 사실은 약물로 얼룩진 기간이었다. 사이클 선수들에겐 지워버리고 싶은 시대가 돼버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서 9초79의 당시 세계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캐나다의 벤 존슨,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육상 100m와 200m를 석권한 매리언 존스도 나중에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록과 선수 자격을 모두 잃었다. 통산 홈런 762개로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기록을 갖고 있는 배리 본즈 또한 약물 스캔들로 흠집이 크게 났다. 열광하며 지켜본 스포츠의 역사적 순간이 오욕의 기록으로 바뀔 때 관객들은 씁쓸한 배신감을 맛본다.

민동용 주말섹션 O2팀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