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이자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
근래 들어 신문의 패션면 뿐만이 아닌 사회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프랑스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인 ‘에르메스(Hermes)’이다. 사회면에서 언급되는 에르메스에 관한 내용은 대부분 무슨 가죽으로 만든 가방 하나의 가격이 천만 원을 웃도느냐는 등 다소 부정적인 내용이다.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는 필자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브랜드가 디자인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만들고, 가죽 장인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 작품과도 같은 제품인 점을 감안해 브랜드의 가격 책정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에르메스에서 제작하는 가방, 특히 버킨, 켈리 등의 여배우의 이름이 붙은 가방들은 일반 대중이 생각하기에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높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에르메스의 가방들은 그 생산량이 한정돼 있어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히 부족해 언제나 품절 상태여서 구입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몇 달을 아니 몇 년을 넘게 기다린다 하더라도 반드시 구입하겠다며 대기자 명단에 까지 이름을 올리는 등 희소성이 더해져 신문의 사회면에서 다루기 좋은 내용으로 취급되는 지도 모를 일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에르메스의 가방이 바로 버킨과 켈리이다. 패셔니스타들 사이에서는 대를 이어 물려 줄 수도 있는 이른바 최고 가치의 백이기도 한 버킨과 켈리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의 성(姓)에서 가방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프랑스에 사는 영국출신의 배우이자 가수인 ‘제인 버킨(Jane Birkin)’과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에서 모나코 공국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가 바로 그녀들이다.
그 중에서 지금은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최고의 여배우로 남아있는 그레이스 켈리가 어떻게 에르메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아카데미 시상식의 착장은 어떠했는지, 모나코 국왕과의 결혼식 의상은 어떻게 준비 되었는지 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955년 2월, 아카데미 위원회는 27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를 발표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극작가 ‘클리포드 오뎃츠’의 연극 작품을 각색한 영화 ‘갈채’의 ‘조지 엘진’역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갈채’로 여우주연상 후보가 되기 전까지의 그레이스 켈리는 ‘알프레드 히치콕’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히치콕의 금발’로 유명했다. 그녀는 1953년부터 제작된 히치콕 감독의 세련된 스릴러 작품들인, ‘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그리고 ‘나는 결백하다’ 등에서 냉혈한 도시 여인을 연기했었다.
영화배우이자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
그러나 그녀는 ‘갈채’를 통해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 보여준 파리의 쿠튀르풍의 세련된 의상을 뒤로하고, 청바지와 허름한 셔츠에 뿔테 안경을 쓴 시골여인 ‘조지’를 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녀의 이전 이미지를 잊게 하는 완벽한 연기는 촬영장의 모든 이를 감동시켰고, 마지막 촬영 날에는 전 스태프들로부터 감동에 대한 감사의 기념패를 선물로 받기까지 했다. 그 상패에는 “우리의 진정한 ‘시골 소녀’에게~ 다음 해 아카데미 수상 전까지 이 상패를 오스카 트로피 대신 간직해 주십시오”라고 새겨져 있었다.
한 달 후,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간부들은 자금을 투자해 그레이스 켈리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아카데미 시상식의 순간을 만들어 주려 물밑작업에 착수했다. 그녀의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여배우들의 ‘클래식’이라 불리던 얇은 어깨 끈으로 이어진 슬림하게 밑단이 발을 덮에 바닥에 찰랑찰랑 닿는 원통형의 ‘칼럼 드레스(Column Dress)’와 슬리브리스 가운이었다. 그 드레스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수석 의상 디자이너인 ‘에디스 헤드(Edith Head)’가 그레이스 켈리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그녀의 얼음 같은 이미지와 어울리는 아쿠아 마린 컬러에 프랑스산 새틴 소재로 글래머러스함을 더했다. 에디스 헤드가 그레이스 켈리의 새틴 드레스를 만들고 있었을 당시, 그녀는 영화 ‘로마의 휴일’의 의상으로 5번째의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할리우드에서 에디스 헤드의 실력과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에디스 헤드가 ‘갈채’의 의상을 미리 준비하는 동안 그레이스 켈리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히치콕 감독은 영화 ‘나는 결백하다’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맡은 배역이었던 석유 재벌 상속녀 역의 ‘프란시스 스티븐스’가 프랑스 남부의 고급 휴양지 ‘칸느’의 어느 호텔에 묵는 장면을 위해, 의상 담당인 에디스 헤드에게 파리의 상토노르(St. Honore)거리에 위치한 고급 피혁 브랜드, ‘에르메스’의 부티크에 가서 필요한 액세서리 제작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에디스 헤드는 그녀의 오랜 뮤즈였던 ‘오드리 헵번’을 ‘위베르 드 지방시’에게 빼앗긴 후였기에, 그 다음의 뮤즈로 완벽에 가까운 그레이스 켈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터라 에르메스 부티크에 그녀를 함께 데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에르메스 부티크의 두 미국 여인은 넋을 놓고 이것저것을 만지고 보고 탐했다.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맛보고 싶어하는 두 명의 소녀들이 된 것처럼, 부티크 안의 모든 아이템들과 사랑에 빠져 버렸었죠”라고 에디스 헤드는 그 운명적인 어느 봄날 오후를 회상했다.
에르메스와 그레이스 켈리.
바로 그날이 그레이스 켈리가 에르메스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날이었다. 매장으로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의상 디자이너였던 에디스 헤드가 그녀를 데리고 갔지만, 결국 그레이스 켈리를 에르메스에게 소개를 한 사람은 바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인 것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에르메스의 가죽 가방과 장갑과 핸드백, 실크프린트 스카프, 럭셔리한 도자기 장신구들의 세련됨과 고급스러움에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 날 이후부터 모나코 공국의 왕비가 되어서 까지도 에르메스를 애용하는 고객이 되었다. ‘켈리백’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모나코 왕비가 된 후에 애용했던 에르메스의 백의 한 종류가, 지금의 파파라치와 같은 사진기자에게 찍히게 되었는데, 훗날 언론들이 그것을 ‘켈리 백’이라 명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되었다.
“이 순간의 감동이 너무 커서 지금 이 느낌을 전하는 것이 무척 어렵네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나의 수상을 가능하게 도와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입니다”
‘판타지 극장’의 무대 뒤에서는 시상식의 스태프들이 오늘 밤의 주인공인 그레이스 켈리가 이 정글과도 같은 TV 카메라와 사진 기자들의 숲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를 의논을 하고 있었을 정도로 그날 밤은 오롯이 그녀의 것이었다.
1956년 1월, 모나코 공국의 왕자 ‘라이니어 3세’와의 약혼 발표를 한 그레이스 켈리는 당장에라도 할리우드를 떠날 태세였다. 에디스 헤드는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하고 싶었으나, 그레이스 켈리는 정중히 거절했고, 대신에 신혼여행을 위한 의상의 제작을 의뢰했다. 그 거절에 에디스 헤드는 격노했는데,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레이스 켈리가 그런 결정을 한 데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원래 소속 영화사(당시는 배우들이 거대 영화사에 소속이 되어 있었던 시대였음)인 MGM과의 사이에 체결되어 있었던 장기 계약의 파기를 협상하기 위해서였다. 그 협상안에는 모나코 왕실 결혼을 위한 웨딩드레스와 예복 디자인을 MGM 의상 디자이너의 ‘헬렌 로즈’가 맡고, 또한 MGM이 그녀의 결혼에 관한 30분짜리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하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진 제공ㅣ조엘 킴벡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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