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경영
오직 스크린에서만 보이는 배우다. ‘푸른 소금’ ‘모비딕’ ‘카운트다운’ ‘최종병기 활’ ‘부러진 화살’ ‘봄, 눈’ ‘써니’…. 지난해 무려 영화 7편에 출연했지만 그의 방송 출연이나 신문 인터뷰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올해도 그의 활약은 눈부시다. ‘5백만불의 사나이’ ‘후궁’ 등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왔다. 그의 연기 정점은 아마도 ‘남영동 1985’가 아닐까.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리 본 이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이두한. 바로 작고한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괴롭힌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그린 배역이다.
그의 연기는 폭력이란 극한의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 묻어둔 점에서 돋보인다. 아내의 미장원을 걱정하며, 스톱워치를 들고 죽지 않을 만큼 시간을 재며 ‘사무적으로’ 고문을 자행하는 이근안을 보며 관객은 폭력의 아이러니에 진저리를 칠 것이다. 낮은 톤으로 말하던 그가 딱 한 번 광기를 드러내는 순간은 그래서 더 ‘임팩트’가 있다.
민병선 기자
그 사건 이후 언제부터인가 그의 연기는 이전보다 깊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궁’의 내시 연기에서, ‘써니’의 첫 사랑 연기에서 관객과 평단은 인생의 ‘쓴맛’이 빚어낸 곰삭은 연기의 맛을 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언제쯤 그를 용서해야 하는 걸까라는 관객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경영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