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
백작을 속이기 위해 편지를 쓴 수잔나(임선혜·왼쪽)와 백작부인(이화영). 고양문화재단 제공
역시 임선혜의 존재는 압도적인 빛을 발했다. ‘피가로의 결혼’이 아니라 ‘수잔나의 결혼’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목소리 자체가 비할 데 없는 미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악센트로 다채로운 표정을 부여하는 노련함이 돋보였다. 동작은 대담하고도 시원시원했다. 3막 5장에서 그가 피가로의 뺨을 때린 게 시늉이었는지 진짜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임선혜가 선보인 변화무쌍한 표정 연기는 우리나라 오페라 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다른 배역도 대체로 훌륭했다. 바리톤 오승용은 권위적이면서도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는 백작의 내면을 훌륭하게 연기했고, 백작부인 역을 맡은 이화영은 초반에 비브라토가 다소 심하긴 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차분하고 기품 있는 가창을 들려주었다. 주역인 피가로를 맡은 김진추는 연기는 좋았지만 필요 이상으로 힘을 실어 노래하는 경향이 있었다. 피가로와 백작 역 모두 바리톤이 부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좀 더 가벼운 가창이 차별화에는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반주를 맡은 김덕기 지휘 프라임 필하모닉은 처음에는 좀 빈약한 연주를 들려주었지만(서곡 후반부의 다이내믹 처리는 약간 괴상했다) 2막 무렵부터는 안정된 연주로 극에 무리 없이 융화되었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