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로풍찬 유랑극장’ ★★★☆
극단 달나라동백꽃 제공
그는 대가들의 기존 작품의 배경을 한국적 현실로 바꾸는 데 비상한 재주를 발휘해 왔는데 이번 작품 ‘로풍찬 유랑극장’(부새롬 연출)은 1985년 초연한 세르비아 시인이자 극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를 원안으로 재구성했다. 원안의 배경이 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군에 점령당한 세르비아의 한 마을은 1948년 여순반란사건 이후 좌우 대립이 극심한 전남 보성의 새재마을로 바꿨다. 시점은 빨치산과 토벌대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1950년 6월 24일, 6·25전쟁 발발 하루 전이다.
아코디언 소리와 북 장단의 흥겨운 소리와 함께 신파극, 국극, 신극 출신 배우 넷이 뒤섞인 로풍찬 유랑극장이 입성한다. 이들은 공연도 하기 전에 신원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순경 기회철(전석찬)에게 고초를 당하고 피 묻은 죽창을 들고 설쳐대는 우익청년단원 피창갑(허지원)의 살기에 주눅 든다.
김은성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사실적인 방언의 향연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했다. 작품에서 인용되는 실제 연극 대사를 원작의 서양 희곡이 아니라 1930, 40년대 우리 희곡에서 끌어온 노고는 감탄할 만했다.
빨치산 아들을 둔 여관주인 조귀엽 역의 이지현 씨가 보여준 사실감 넘치는 연기와 경찰관 남편을 잃은 과부로 빨치산 사내를 사랑하는 양정순 역 김신록 씨, 피창갑 역 허지원 씨의 연기도 신인답지 않게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이념과 정치를 뛰어넘어 사람다움을 일깨워주는 예술의 존재 의의를 역설한 원작의 묘미를 해학적으로 잘 살려냈지만 인간백정 피창갑이 그를 통해 구원을 얻는 과정을 더 설득력 있게 묘파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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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 2만 원. 02-6349-4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