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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광기의 시대에 사람다움 일깨우는 예술의 힘

입력 | 2012-10-16 03:00:00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 ★★★☆




극단 달나라동백꽃 제공

최근 대학로에서 맹활약하는 극작가 김은성(35)의 장점은 한국사회 현실이나 한반도 역사의 굴곡진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 해학을 곁들여 사실적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그는 대가들의 기존 작품의 배경을 한국적 현실로 바꾸는 데 비상한 재주를 발휘해 왔는데 이번 작품 ‘로풍찬 유랑극장’(부새롬 연출)은 1985년 초연한 세르비아 시인이자 극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를 원안으로 재구성했다. 원안의 배경이 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군에 점령당한 세르비아의 한 마을은 1948년 여순반란사건 이후 좌우 대립이 극심한 전남 보성의 새재마을로 바꿨다. 시점은 빨치산과 토벌대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1950년 6월 24일, 6·25전쟁 발발 하루 전이다.

아코디언 소리와 북 장단의 흥겨운 소리와 함께 신파극, 국극, 신극 출신 배우 넷이 뒤섞인 로풍찬 유랑극장이 입성한다. 이들은 공연도 하기 전에 신원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순경 기회철(전석찬)에게 고초를 당하고 피 묻은 죽창을 들고 설쳐대는 우익청년단원 피창갑(허지원)의 살기에 주눅 든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 넘어가는 시기에 한가하게 무슨 연극이냐며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이들이 꿋꿋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번안한 ‘노민호와 주인애’를 마을 장터에서 공연한 뒤 서슬 퍼렇던 마을사람들의 심리에 변화의 파문이 일어난다.

김은성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사실적인 방언의 향연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했다. 작품에서 인용되는 실제 연극 대사를 원작의 서양 희곡이 아니라 1930, 40년대 우리 희곡에서 끌어온 노고는 감탄할 만했다.

빨치산 아들을 둔 여관주인 조귀엽 역의 이지현 씨가 보여준 사실감 넘치는 연기와 경찰관 남편을 잃은 과부로 빨치산 사내를 사랑하는 양정순 역 김신록 씨, 피창갑 역 허지원 씨의 연기도 신인답지 않게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이념과 정치를 뛰어넘어 사람다움을 일깨워주는 예술의 존재 의의를 역설한 원작의 묘미를 해학적으로 잘 살려냈지만 인간백정 피창갑이 그를 통해 구원을 얻는 과정을 더 설득력 있게 묘파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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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 2만 원. 02-6349-4721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