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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필수]급발진 조사 안 하나, 못하나

입력 | 2012-10-17 03:00:00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최근 자동차 급발진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국토해양부의 급발진합동조사단이 이달 말 2차 조사 발표를 할 예정이다. 1차 조사 결과 2건의 급발진 의심사고는 모두 운전자 과실로 발표됐다. 자동차 결함은 없다는 것이다.

2003년 이후 올 6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신고된 급발진 의심사고 건수는 1580건이다. 그러나 신고되지 않은 건수가 이보다 5배 많다는 전문가들의 추정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에 신고된 1725건 중 실제로 조사된 것은 1%도 되지 않는 17건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조사마저도 형식적이어서 운전자를 위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자동차 급발진은 운전자의 의지에 관계없이 자동차가 오작동해 급발진으로 사고를 유발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자동차 전기전자장치의 전자파 등에 의한 기기 오동작으로 추정된다. 약 15년 전 마련된 자동차 안전기준에도 전자파 차폐(遮蔽·외부의 전기, 자기에 영향 받지 않도록 함)에 대한 조항이 있다. 전자파로 인해 자동차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차량의 전기전자화가 급증하면서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도 증가할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가 빈발했지만, 어느 한 건도 자동차 결함으로 판정 나지 않았다. 작년 미국에서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가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다.

문제는 현재의 증거자료로는 운전자의 실수나 자동차 결함 중 어느 것이 급발진의 원인인지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국토부의 급발진 합동조사단의 역할은 시작부터 한계가 있다. 자동차의 시스템을 잘 모르는 소비자(운전자) 쪽 입장은 자동차 회사보다 불리하다. 자동차에 전혀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운전자가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를 내세우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급발진 의심사고는 운전자의 패소로 이어졌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하는 공공 조사기관이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다. 자동차회사에 면죄부만 주는 꼴이다. 국내에서 소비자가 각종 자동차 문제에 봉착할 경우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치도 ‘권고’에 머무르고 있고 소비자 단체는 전문성이 부족하다.

대안으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증거 자료의 한계를 인정하고 국토부에서 자동차 급발진조사위원회를 상설 기관으로 두는 것이다. 이 기관은 선의의 급발진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과 급발진을 줄이는 운전방법 및 예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로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급발진이 운전자 실수가 아니라는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블랙박스의 카메라 중 하나를 발쪽으로 향하게 해 운전자가 실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명백하게 확인하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의 운전습관을 비롯한 소프트웨어적인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 에너지 절감형 차량 공급도 많아져야 한다. 급발진이 발생하지 않는 수동변속기 차량은 국내에서 보기 어렵다. 유럽은 두 대 중 한 대가 수동변속기 차량이고 출발도 천천히 하는 에코드라이브 운동이 보편화돼 있어 급발진 발생률이 적다. 우리는 에너지 낭비는 물론이고 가격 부담이 되는 자동변속기 차량이 대부분인 데다 운전 자체도 3급(急), 이른바 급출발, 급가속, 급정지가 몸에 배어 있어 급발진을 더욱 부추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공공 소비자 기관이 등장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의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