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안전자산? ‘자라(ZARA)’
스페인 최고 재벌이자 8월 워런 버핏을 제치고 세계 3대 부호에 오른 아만시오 오르테가. 사진 출처 텔레그래프
위기에 빠진 스페인 사람들이 희망으로 여기는 기업인이 있으니 의류 재벌이자 이 나라 최고 부자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76)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패스트(Fast) 패션 브랜드 ‘자라(ZARA)’로 유명한 인디텍스(Inditex)의 창업주이다. 미국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르테가 회장은 8월 6일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으로 세계 3위 부자에 올랐다. 그의 재산은 스페인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세계적으로 저가 의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올 들어 114억 달러(32%) 증가했다.
오르테가 회장은 철저하게 은둔형의 삶을 살고 있다. 2001년 기업 상장을 앞두고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했을 정도다. 그전까지 사진 한 장 유포되는 일이 없었고 언론사들의 집요한 인터뷰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 회사 내 측근들조차 2001년 처음으로 회장 얼굴을 봤다고 말했을 정도다.
오르테가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철도회사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가사도우미였다. 13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의류 공장 배달원이 되는데 나중에 그가 의류업에 스피드 경영을 도입한 계기가 된다. 그는 “디자인 숍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의류 가게로 오가는 배달 일을 하면서 ‘유통단계를 줄이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속도’의 소중함을 깨쳤다”고 했다.
그는 27세 때 아내와 함께 목욕가운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의류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뒤 라코루냐에 ‘자라’ 1호점을 설립했다. 1986년 이혼했으며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딸이 두 명 있다. 현재 후계자 수업은 두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받고 있다.
캐서린 영국 세손빈이 지난해 자선바자 행사에입고 나온 ‘자라’ 드레스. 그녀가 입고 나온 후 몇 시간 만에 품절됐다. 사진 출처 데일리메일
‘자라’의 비즈니스 모델은 유행을 예측해 옷을 만들어 놓는 게 아니라 변화를 순발력 있게 반영하는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이다. 2주에 한 번씩 매장 물건의 70%를 교체하며 연간 2만여 종의 옷을 선보이고 4주 이상 매장에 두는 제품이 없다.
‘자라’ 브랜드의 경우 디자인 팀이 전 세계 대리점에 옷을 만들어 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주에 불과하다. 경쟁업체인 미국의 갭(Gap), 스웨덴 에이치앤엠(H&M)보다 무려 12배나 빠르다.
‘자라’는 세련된 디자인과 함께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비결은 중간 유통 단계를 대거 생략하고 기획 디자인 제조 공정을 통합한 데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의류 장난감 등 제조업체들은 인건비가 낮은 나라를 찾아 공장을 옮겼다. 그러나 인디텍스 공장들은 스페인 현지나 스페인과 가까운 모로코에 있다. 오르테가 회장은 공정 통합, 유통과정 단순화, 효율적인 재고 관리를 인건비 절감보다 우선시했다.
또 점포 위치 선정과 디스플레이에만 신경 쓸 뿐 따로 광고를 하지 않는다. 사생활은 물론 사업 자체도 조명 받는 것을 원치 않는 오르테가 스타일답게 패션 잡지회사에 옷 샘플을 보내 주는 일도 없고 제품 광고를 찍는 일도 없다. 이 회사 마케팅 비용은 총 비용의 0.4%에 불과하다.
현재 세계 패션시장은 전쟁 중이다. 잘나가던 이탈리아 브랜드 베네통은 2월 상장을 폐지했으며 세계적인 브랜드 갭, H&M도 ‘자라’에 고전하고 있다. 영국 잡지 가디언은 6월 ‘자라야말로 스페인의 유일한 안전자산’이라고 했다. 오르테가 회장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이다. 하버드 등 세계 유수 경영대학원에서 ‘제조업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하는 오르테가 회장. 그는 비틀거리는 스페인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을까.
이수진 통·번역가
(참조 외신=CNN, 뉴스위크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 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