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한국 대통령의 첫 공식방문, 더구나 국빈으로서의 방일이었다. 쇼와 천황은 과거 식민지 지배의 정점에 있었던 만큼 어떤 말로 대통령을 맞을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사죄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희망은 잘 알지만, 전후 일본국 헌법에서 천황은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이의 접점을 찾느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은 머리를 쥐어짰다.
당시 외교 취재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어떤 발언이 나올지 동료들과 그 내용을 추적하고 있었고 ‘유감’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는 확실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말도 아니지만 당시 상황에서, 더구나 천황의 발언이라면 무게감이 달랐다. 아사히신문은 대통령 방일 전날, 과감히 ‘천황이 유감 표명하기로’라고 보도했다.
한국 대통령 맞을때마다 ‘과거’ 언급
당시 일본으로서는 최대한의 발언이었지만 한국으로서는 어딘지 부족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전 대통령은 답례사에서 “우리 국민과 함께 엄숙한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라고 답했지만 한국 언론에는 ‘부족하다’ ‘애매모호하다’ 등의 불만스러운 평가가 많았다.
그로부터 6년 후 지금 아키히토 천황은 노태우 대통령을 만찬회에서 맞았다. ‘쇼와 천황의 발언보다 일보 진전된 표현을’이라는 한국 측의 강한 요망도 있어 일본 측은 숙고 끝에 발언을 준비했다.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당한 괴로움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잘 보면 알 수 있듯이 쇼와 천황이 말한 유감의 뜻보다 마음이 상당히 담겨 있고, 키워드는 ‘통석의 염’이었다.
올해 여름 이명박 대통령이 불만스러운 사례로 거론한 천황의 발언은 이 ‘통석의 염’이었다. 하지만 그전 천황이 맞았던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질문 받고 “나도 국민도 한일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이것으로 일단 결말을 봤다고 생각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답했다. 그랬던 만큼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나도 매우 놀랐다.
천황은 그 후로도 한국 대통령을 맞을 때마다 과거를 언급해왔다.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깊은 슬픔의 마음’을 나타냈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깊은 슬픔은 늘 제 기억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천황의 발언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명확한 사죄의 말은 총리가 그 책임하에 하고 있다.
원래 천황에게는 자유가 없다. 국회 소집과 총리대신 임명이라는 큰 직무가 있지만 이런 것들은 형식상의 권한이다. 일반 국민에게 주어진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도 없다. 평화를 강력히 바라는 마음에서 때때로 일본의 과오를 입에 담지만 안보 정책은 말할 수 없다.
‘반론의 자유’ 없어 표현에 한계
그래도 많은 일본인은 천황과 황후를 경애하고 있다. 많은 부자유와 중압감을 감수하면서도, 예컨대 재해 피해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외국과의 우호를 바라면서 빈객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천황이 한국 땅을 밟으면, 말로 전달하는 이상의 마음을 한국 여러분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79세가 되는 노구에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것인가.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