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왼쪽)과 수선화의 알뿌리.
한편으론 풍성한 곡식이며 탐스러운 열매들은 이전 계절의 준비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으리란 생각도 해 본다. 꽃도 그렇다. 봄에 피는 화사한 꽃들은 대부분 이전 해에 생긴 꽃눈에서 피어난다. 그런 마음으로 화사한 내년 봄을 기약하며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봄에 꽃을 피우는 알뿌리 식물을 심는 것이리라.
알뿌리 식물은 흙 속의 비대한 뿌리(정확히는 땅속 잎이나 줄기도 포함)에 양분과 수분을 저장한다. 알뿌리는 번식의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가 많이 먹는 양파와 마늘은 잎에, 감자와 생강은 줄기에, 고구마는 뿌리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이것을 우리가 섭취하는 것이다.
알뿌리 꽃식물의 원산지는 온대와 아열대로 나뉜다. 온대 원산으로 봄철에 꽃이 피는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무스카리, 크로커스는 가을에 심는다. 열대와 아열대 원산으로 여름에 꽃이 피는 백합, 달리아, 글라디올러스, 칸나는 봄에 심는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번 주말에 시간이 나면 알토란같이 예쁜 튤립 알뿌리를 구해 화단 한구석에 심어보면 어떨까. 처음에만 물을 주고 겨울 동안에는 그 존재를 잊어버려도 된다. 그동안 튤립 알뿌리는 추위를 견뎌내며 꽃눈을 만든다.
내년 3월이 되면 큼지막한 잎이 흙을 가르며 불쑥 솟아오를 것이다. 이때는 다른 이들이 새싹을 무심코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4월 말이 되면 화사한 튤립 꽃이 오므렸다 벌렸다를 반복하며 2, 3일간 핀다. 다만 요즘같이 이상고온이 계속되면 튤립 꽃이 활짝 피어버린다는 게 아쉽다. 튤립 특유의 수줍게 오므린 모습을 보기 어려운 것이다. 튤립 꽃은 기온이 20도 이상이 되면 꽃잎 안쪽 표피세포가 바깥쪽의 것보다 빨리 자라 활짝 피어버린다.
튤립 꽃이 진 후에는 내년 준비를 위해 알뿌리를 계속 키워야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여름 장마철에 알뿌리가 썩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수선화나 무스카리, 크로커스는 문제없이 계속 알뿌리가 켜져서 다음 해에 꽃을 피우므로 그냥 심은 채 놔두면 된다. 크로커스의 경우 꽃이 핀 후 잎이 말라버리는데, 뿌리는 살아있으니 버리면 안 된다.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