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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남북관계 주도할 대선후보 있나

입력 | 2012-10-20 03:00:00


방형남 논설위원

12·19선거는 북한 김정은이 집권한 뒤 처음으로 경험하는 남한 대선이다. 남한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는 북한에도 초미의 관심사다. 김정은과 남한의 새 대통령은 잘되면 직접 대면, 아니면 원격(遠隔)대결을 하는 방식으로 향후 5년을 부딪쳐야 한다. 대선 이틀 전인 12월 17일은 김정일 사망 1주기다. 실질적인 홀로서기 1주년을 맞는 김정은의 감회 또한 각별할 것이다.

朴-文-安 뒤에 어른거리는 김정은

북한은 남한이 대선을 치를 때마다 ‘통일’과 ‘반통일’ 잣대를 들이대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안달복달한다. 올해도 ‘10·4선언’ 5주년인 4일 조선중앙통신을 내세워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애국과 매국, 통일과 분열을 가르는 시금석”이라며 노골적인 대선 개입에 나섰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반통일 반북대결분자’로 규정하고 공격한 것과 똑같다. 지도자가 바뀌었으니 대남(對南)정책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김정은은 독재권력과 함께 선거 개입 공작도 고스란히 물려받은 모양이다.

올해 북한의 선거 간섭은 유별나다. 4월 총선 이후 북한의 대선 개입 시도는 월평균 144회로 2007년의 52건에 비해 거의 3배로 늘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아태평화위원회 등의 선전단체가 주로 나서지만 남한의 젊은층을 겨냥해 유튜브와 트위터까지 동원한다. 남한 사정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북한의 새로운 수법이다. 노동신문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선포 40주년인 17일 “남조선 각 계층은 새누리당의 교활한 술수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하며 유신독재의 부활을 결코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선동했다.

북한의 선거 개입을 우리 대선후보들과 유권자들이 무시하면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북한이 제시한 프레임에 대선후보들이 걸려들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후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계승자를 자임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햇볕정책의 성과를 계승하여 더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조건부지만 10·4선언을 포함한 남북합의 준수 의사를 밝혔다. 박-문-안 뒤에 김정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아 걱정이다. 북한 상층부는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내년 2월 이후 이명박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대북정책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 있을지도 모르겠다.

10·4선언 준수를 새로운 남북관계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접근방식은 위험하다. 선언 2항에는 ‘남과 북은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대선 개입은 북한이 하지 않기로 약속한 내정간섭에 해당한다. 3항에는 ‘남과 북은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 의무를 확고히 준수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북한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자행했다. 북한이 10·4선언 준수를 촉구하는 것은 망발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북한의 억지에 맞장구를 칠 게 아니라 잘못을 통렬하게 받아쳐야 옳다.

北 10·4선언 준수 요구는 망발

박-문-안은 북한의 요구에 굴복하는 후보, 아무 일 없다는 듯 북한의 도발에 면죄부를 주고 남북관계를 과거로 복귀시키려는 후보에게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표를 줄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29세 김정은의 선전공세에 말려 대선후보들이 10·4선언에 빠져들면 지긋지긋한 북핵 공포와 도발의 수렁에서 벗어날 날은 하염없이 멀어진다.

대선후보들에게 남북관계를 주도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창의적 정책으로 북한의 10·4선언 타령을 깨야 한다. 가령 ‘남북정상회담 서울 개최’ 같은 제안을 왜 못하는가. 김정일은 아웅산테러 등 많은 악행을 저질러 서울에 올 형편이 못 됐지만 김정은은 훨씬 자유롭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