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래전에 친구와 약속을 했다. 세상이 반쪽 나도 우정만은 지켜가기로. 심지어 한쪽이 먼저 죽을 경우, 남는 쪽이 그 가족을 보살펴주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나자 ‘무쇠 같은 의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부가 함께 어울리게 되어 즐거움이 두 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친구 부부와의 관계는 이내 서먹해졌고 세상보다 먼저 우정이 반쪽 나고 말았다.
남자는 안타까웠다. 친구를 동창모임에서 만났을 때에는 어깨를 치면서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친구의 표정이 많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아내들끼리의 경쟁이 남자들 우정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는가. 그 정도로 끝날 관계라면 ‘우정’이라고 일컬을 가치도 없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베갯머리송사를 이겨낼 남자가 없다고 했다. 잠자리에서 아내가 바라는 바를 속살거리며 청하면 왕들도 꼼짝 못하고 휘둘렸다는데. 아내의 베갯머리송사로부터 자신 또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를 태하는 태도가 바뀌었을 것이고, 그게 친구에게도 감지되었을 터였다.
남자는 아내에게 작심하고 물었다. 친구 부부의 어디가 그렇게도 싫은지. 예상을 뒤엎고 아내는 “그 부인보다 친구가 더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이유를 따져 묻자 이렇게 말했다.
“촌스럽잖아. 자기가 왜 그런 촌닭이랑 절친이 됐는지 모르겠어. 그 사람, 옛날에 학교 다닐 때에도 자기만 졸졸 따라다녔다면서?”
아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자기가 그랬잖아. 항상 풀이 죽어 있어서 점심도 사주고 그랬다며?”
“내가 언제?” 얼버무려 놓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땅거지였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마침내 우정을 반쪽 낸 원흉을 찾아냈다. 이놈의 입이 문제였다. 으스대고만 싶은 입.
아내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만 듣고 친구를 무시하게 되었고, 그런 분위기가 친구의 아내에게까지 전해지면서, 마침내 그토록 소중했던 ‘우정’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친구 부부라고 베갯머리송사를 하지 않았겠는가. 무시당하는 남편 때문에 그의 아내는 얼마나 슬펐을까.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