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대 한 여학생이 남자 친구가 줄담배를 피우며 이별을 통보한 행위가 성폭력이라며 사회대 학생회에 제소했다. “그는 그날 저를 만난 뒤 이별을 통보하기까지 계속 담배를 피웠습니다. 남성성을 부각해 여성의 주체적 권리를 압도한 것입니다. 흡연을 통해 표현하는 깊은 고뇌와 위압감 앞에서 내 감정과 입장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그 여학생이 줄담배 이별 통보를 성폭력으로 규정한 근거다.
▷최근의 성폭력은 강간 추행 성기노출 등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적 정신적 폭력까지 포함되는 추세다. 여기서 성폭력 여부를 규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강제성’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남자가 줄담배라는 마초적 행위로 여자의 감정을 무시했느냐이다. 줄담배는 초조할 때 많이 태운다. 줄담배를 피우며 이별 통보를 하면 성폭력이고, 사랑 고백을 하면 성폭력이 아닌가. 줄담배 대신 소주를 원샷으로 거푸 마시며 헤어지자고 하면 성폭력이 아닌가. 줄담배를 남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사고가 편견은 아닌가. 남자가 연기를 계속 내뿜으며 남성성을 부각할 때 주체적 권리를 가진 여자는 뭘 하고 있었나. 페미니스트를 자부하는 필자로서도 판단이 어렵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