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침스키/엘리자베스 헤스 지음·장호연 옮김/448쪽·2만2000원·백년후
1) 님 침스키는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어미로부터 떨어져 미국 뉴욕의 스테파니 라파지 가족에게 입양됐다. 2) 수화로 ‘고양이’라고 말하는 님 침스키. 그가 언어를 배운 것인지, 단지 동작을 흉내 내 외운 것인지에 대해선 학계 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3)님 침스키는 설거지하는 법을 배웠다. 음식을 먹고 난 뒤엔 종종 빈 그릇을 치웠다. 4)님 침스키는 인간과 함께 노는 걸 즐겼다. 델라필드 별장 내 연못에서 낚시하고 있다. 백년후 제공
미국의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언어 능력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행동심리학자 B F 스키너는 “동물도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스키너의 제자였던 허버트 테라스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승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갓 태어난 침팬지 한 마리를 1973년 12월 뉴욕의 한 중산층 가정으로 입양 보냈다. 이름은 님 침스키. 놈 촘스키에 대한 도전이자 조롱을 담은 것이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인원 언어 연구로 꼽히는 ‘프로젝트 님’이 이렇게 시작됐다.
침스키를 입양한 스테파니 라파지는 기저귀를 채우고 옷을 입히며 양치질을 해주고 밤엔 옆에 있어주는 등 인간 아기와 똑같이 그를 키웠다. 침스키도 라파지를 엄마로 여겼다. 생후 2개월부터 본격적인 언어 교육을 시작했다. 테라스 교수와 라파지 가족은 침스키에게 수화를 가르쳤고, 침스키는 빠르게 어휘를 습득했다. 침스키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낄 때 수화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4년간 수화를 배우는 등 ‘사람’으로 길러진 침스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태어난 오클라호마대 영장류연구소에서 사람이 아닌 침팬지로서, 다른 침팬지들과 함께 살게 됐다. 이후 침스키는 우리에 갇힌 채로 이곳 저곳을 전전했다. 심지어 영장류를 대상으로 의학 생체 실험을 하는 영장류약물외과실험연구소에 팔려갈 뻔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강렬한 항의 덕에 침스키는 그곳에 팔리지 않고 동물보호소로 보내졌다. 그리고 2000년 스물일곱 살의 짧은 생애(침팬지의 평균 수명은 50세 정도)를 마감했다.
그렇다면 침스키는 언어를 배웠을까. ‘프로젝트 님’을 진두지휘한 테라스 교수는 1979년 잡지 ‘사이언스’를 통해 “침스키는 언어를 배운 게 아니라 단지 조련사의 행동을 흉내 낸 것”이라며 “언어는 인간 종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발표했다. 님 침스키 연구를 통해 놈 촘스키가 옳았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동물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침스키의 27년 삶을 추적한 이 책에선 ‘프로젝트 님’의 성공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로 선택되고 버림받은 침스키의 삶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무엇인지 묻고 있다. 실제로 침스키는 스테파니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어릴 적 좋아했던 그림책 등을 소중히 간직했고 인간에게 배운 수화를 동료 침팬지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에게서 끊임없이 버림받았고, 그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다.
동물보호소 철장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침스키의 눈은 스테파니 라파지의 품에 안겨 ‘엄마’와 키스를 나누던 어린 침스키의 생기발랄한 눈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나는 도대체 누구지? 왜 내가 이렇게 우리에 갇혀 있어야 해?”라고 묻는 듯하다. 우리는 어떤 답변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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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