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황선홍(오른쪽) 감독이 20일 경남과 FA컵 결승에서 연장 혈투 끝에 승리를 확정한 뒤 김광석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포항, 4년만에 FA컵 우승 탈환…명장면 & 뒷얘기
박성호 골 만든 ‘황선홍의 여유’
우승상금+보너스…6억 돈잔치
포항 스틸러스가 4년 만에 FA컵을 탈환했다.
○절실했던 첫 경험
종료 휘슬이 울리자 황선홍 감독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홈 서포터스 쪽 스탠드 철망에서 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도 백미였다. 이유가 있었다. ‘준우승’의 설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3년 간 부산을 이끈 황 감독은 컵 대회와 FA컵에서 한 번씩 준우승에 그쳤다.
감격의 그날 밤 황 감독은 “월드컵에서 골 넣고 싶다는 생각 못지않게 우승이 절실했다. 계속 징크스가 이어지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눈물은 킥오프 전부터 나왔다.
그래서일까. 제자들과 라커룸에서 마주하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좋을 땐 무슨 말을 하지?” 웃음이 넘쳤다. 베테랑 노병준은 “2009년 컵 대회 결승에서 만났을 때 우리 감독님은 적장이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올해는 우승시켜 드리고 싶었다”며 웃었다.
○준비된 자의 거짓말
120분 혈투 내내 황 감독은 짐짓 태연한 척 했다. 물론 속으론 전전긍긍했다. 승부차기로 가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올 시즌 초반만 해도 포항은 지독한 페널티킥(PK) 징크스에 시달렸다. 연장에 들어설 때 황 감독은 선수들에게 “내 수첩에 상대 PK 순번이 적혔있다. 편하게 뛰라”고 주문했지만 솔직히 전혀 몰랐다. “어떻게 (상대까지) 파악하겠냐. 우리 팀 챙기기도 바빴다.” 하지만 효과는 컸다.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했다.
수혜자는 박성호였다. 포항이 새로 들고 나왔던 ‘제로(0)톱’ 공격 전술은 숱한 화제를 낳았지만 공격수들에게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둘은 계속 대화하며 의견을 나눴고, 박성호는 가장 중요할 때 한 방을 터뜨려 묵은 체증을 시원히 날렸다.
포항|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