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강성노조도 껴안은 노하우… 잉카후예들 “그라시아스”
윤중현 칠카우노 발전플랜트 현장소장(오른쪽)이 직원들과 함께 냉각시설의 시운전 상황을 살피고 있다. 뒤쪽 작은 굴뚝이 이번에 증축한 것으로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는 데 쓰인다. 포스코건설 제공
윤중현 소장은 “문화를 이해하고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한국인의 성실함은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남미 공사의 최대난관, 노조
올해 1월 페루 수도인 리마와 칠카를 연결하는 다리 주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칠카와 리마 지역 노조가 칠카우노 현장에 더 많은 소속 근로자를 보내려다 마찰을 빚은 것. 이 과정에서 칠카 노조원 3명이 사망했다.
남미의 깐깐한 노동법과 강성 노조는 현지에 진출한 외국 회사들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칠카우노 현장도 공사를 막 시작했을 당시에는 현지 근로자들이 한 달에 3, 4번 파업을 했다.
유럽 영향을 받은 노동법이 워낙 까다롭다. 작은 안전사고가 나거나 처우에 조금만 불만이 생겨도 근로자가 작업을 중단한다. 당연히 공사 기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일쑤다.
윤 소장은 “남미는 넘치는 자원과 노동력을 가진 ‘기회의 땅’이라는 건 맞다”면서도 “이곳은 두 얼굴을 가진 곳이라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인프라와 강성 노조, 관료주의 등 때문에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땅’이라는 설명이다.
포스코 직원들은 여러 위기를 넘기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얻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도 한국 직원들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현장 근로자의 딸인 밀레나(9)는 최근 손수 그린 태극기를 들고 현장소장 방을 찾았다. 밀레나는 “무엇보다도 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아빠에게 일자리를 준 곳도 한국 회사”라며 밝게 웃었다. 그는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좋아하고, 10월 초 마을 노래자랑에서는 한국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맞춰 말춤도 선보였다.
현장소장 “페루 마라톤 나도 뜁니다” 윤중현 소장의 별명은 피로회복제다. 고된 해외 생활에도 통기타 공연, 마라톤 등을 하느라 쉬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페루의 한 방송국 주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모습. 포스코건설 제공
공사 현장에는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거대한 굴뚝 6개가 이미 우뚝 솟아 있었다. 뜨거운 증기를 식혀줄 냉각 건물은 마치 거대한 선풍기 수십 대를 천장에 붙여 놓은 듯했다. 포스코건설 직원들은 공사 완료를 코앞에 두고 발전설비 시운전에 한창이었다.
계약서상에는 공사 완료 시기가 올해 12월 중순이었지만 1개월 반을 앞당긴 이달 말 모든 공정이 끝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미 아오키 발주처 현장소장은 “남미에서는 선진국 건설사들도 기간 단축은커녕 정해진 날짜에 공사를 마치는 일이 없다”면서 “한국인들은 하루에 24시간보다 더 오래 일하는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에드윈 플로레스 발주처 총괄 책임자는 “포스코건설의 장점들인 가격 경쟁력, 기술력, 매니지먼트(관리)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매니지먼트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장 고참들의 리더십이 없었으면 공사기간 단축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소장은 2005년 두바이의 ‘D발전소’ 등 해외 주요 공사를 성공시킨 30년 차 베테랑이다. 일반적으로 현장 회의 때는 돈줄을 쥔 발주처가 상석에 앉기 마련이지만 칠카우노 현장에서는 윤 소장이 맨 가운데 앉아 발주처마저 쥐락펴락할 정도다.
직원들은 그를 ‘피로회복제’로 부른다. 그가 통기타를 잡으면 직원 숙소, 현장 사무소 할 것 없이 시원시원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윤 소장이 직접 노래하고, 앨범사진은 부하 직원들이 촬영한 음반이 이제 3집 발매를 앞두고 있다.
얼마 전에는 페루의 한 방송국에서 주최한 마라톤대회에 태극기를 손에 들고 뛰면서 현지 방송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포스코건설을 외치기도 했다.
윤 소장은 “칠카우노 현장 같은 해외 플랜트 사업은 제반 여건이 변변치 못해 어렵게 사는 현지인들을 돕는다는 점에서 더 큰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페루 칠카=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