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도발 원점 완전 격멸’하겠다더니… 경찰, 임진각 진입 첫 차단탈북단체 강화도 옮겨 살포
남북 간 군사적 충돌 우려까지 낳았던 탈북자단체들의 임진각 대북 전단(삐라) 살포 시도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이들은 장소를 바꿔 전단을 날려 보냈다. 정부의 어설픈 대응 탓에 북한의 의도대로 ‘남남(南南) 갈등’만 고스란히 노출시킨 꼴이 돼버린 셈이다.
○ 갑작스러운 원천봉쇄에 갈등만 부각
임진각 몸싸움 22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예정됐던 대북 전단 살포 행사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되자 탈북자단체 회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파주=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임진각 인근 주민과 상인들의 반대 동향과 함께 전단 살포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하는 내용이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찰이 봉쇄하기로 판단했고 우리도 그렇게 이해해 결과적으로 집행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강화도서 전단 12만 장 날려 보내 22일 경찰의 원천 봉쇄로 임진각 진입이 무산된 북한민주화추진연합회 회원들이 인천 강화군 강화역사박물관 앞에서 대북 전단을 담은 풍선을 북쪽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자유북한방송 제공
탈북자단체들은 “스물여덟 살짜리 애송이 김정은의 위협에 눈치를 보는 이명박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전단 살포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회원들과 고성을 주고받기도 했다. 북한이 원하는 남남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이다.
북민련은 결국 이날 오후 6시경 인천 강화군 강화역사박물관 앞에서 전단 12만 장을 날려 보냈다고 밝혔다.
▼ 北 의도대로 南南갈등만 고스란히 노출 ▼
정부가 처음부터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면 이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을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19일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 위협을 내놓은 뒤 군 당국은 전단 살포를 기정사실화하고 북한의 도발에 맞선 ‘단호한 조치’에 초점을 맞췄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19일 “(북한이) 그렇게(공격) 한다면 도발 원점을 완전히 격멸하겠다”고 강조했다. 20일에는 정승조 합참의장이 “적의 도발 원점, 지원세력까지 과감하고 단호하게 응징하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거듭 밝혔고, 21일에는 전방부대의 포병화력 대응 태세를 한 단계 격상했다.
경찰도 ‘22일 임진각의 관광객 출입을 통제한다’고만 밝혔다. 전단 살포행사를 막겠다는 얘기는 없었다. 통일부는 “탈북자단체에 자제를 요청했지만 전단 살포를 막을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던 정부는 22일 오전 갑자기 행사를 원천 봉쇄했다. 김성민 북민련 상임대표는 “22일 오전 8시까지 행사를 막는다는 통보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탈북자단체들이 무리하게 ‘이벤트성’으로 전단 살포행사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전단을 날려 보내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실상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공개적인 이벤트로 북한의 반발을 살 게 아니라 조용히 게릴라식으로 북한에 전단을 날려 보내면 될 일”이라고 꼬집었다.
○ 전단 살포 규제로 해결 가능할까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를 규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정부는 2008년 대북 전단 살포용 풍선에 수소를 넣는 것을 ‘고압가스안전관리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를 했지만 규제의 근거로 삼지는 못했다. 같은 해 전단 살포 때 사전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다가 ‘표현의 자유 제한’ 등을 이유로 폐기됐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22일 대북 전단 살포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에 대해 “국민 여론과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있으면 정부는 거기에 맞게 집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런 부분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와 민간이 서로 협력하면서 정확한 상황 판단에 따라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북 활동가 출신인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정부가 민간단체와 사전 조율해 자율적 판단에 따라 행사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게 현명한 모습”이라며 “행사에 임박해 무리하게 저지하는 것은 정치력 부재를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파주=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