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나이가 들수록 최근 몇 년간의 기억은 어렴풋한데 오히려 젊은 시절의 기억이 훨씬 또렷하다는 사람이 많다. 인지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나.(ID: jjuri****)
김민식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어제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가? 외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쉽게 대답할 것이다. 2, 3분 이상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과거의 일을 기억해낼 수 있다면 그 경험은 이미 우리의 장기 기억에 저장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 달 전 저녁에 먹은 음식은? 기억하기 어렵다. 우리는 매일 식사를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계속 쌓여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즉, 매일 하는 식사에 대한 정보가 장기 기억에 저장돼 있긴 하지만 각각의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꺼내 쓸 수 없다. 반면 한 달 전 오늘이 자신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었다면 기억이 저장된 곳의 단서를 이용해 쉽게 인출할 수 있다.
기억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최초의 경험을 하면서 기억이라는 장치에 입력하는 부호화 단계, 부호화된 경험 정보를 저장하는 단계, 그리고 저장된 정보를 인출하는 단계이다. 어릴 적 기억은 또렷한데 최근 몇 년의 기억은 어렴풋한 현상은 기억의 3단계 모두와 관련돼 있다. 우선 기억이 잘 되기 위해서는 부호화가 잘 되어야 한다. 첫 경험, 강렬하고 독특한 경험일수록 나중에 기억해내기 쉽다.
마지막으로 인출 단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 기억을 인출하면 그 내용이 조금 유연해지고 다시 응고되는 일이 반복되는데, 이러한 인출과 응고의 반복은 마치 쇠붙이를 불에 달궈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기억 내용을 더 확고히 한다. 젊은 시절의 기억을 종종 인출했기 때문에 이 기억들이 상대적으로 더 단단해진 것이다. 노인성 뇌인지 기능 장애로 과거의 일들이 점점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우 역시 비교적 최근의 기억부터 점점 오래된 과거의 순서로 망각이 진행되는 것도 기억의 응고 가설을 뒷받침한다.
김민식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질문은 e메일(savoring@donga.com)이나 우편(110-715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 동아일보 문화부 ‘지성이 답한다’ 담당자 앞)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