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머더 테레사
매기 고브란 여사가 모까탐 지역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이들은 고브란 여사에게 전하는 감사의 뜻으로 한 손에 꽃을 들었다. 사진 출처 가톨릭헤럴드
고브란은 1950년 카이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콥트교(이집트 기독교파) 집안에서 자라긴 했지만 종교인의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 아이도 낳고 마케팅 회사를 거쳐 카이로의 명문 아메리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돼 일과 가정에서 성공한 여성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었다.
○ 쓰레기 뒤져 생계잇는 아이들 보고 충격
그러다 1985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인생이 바뀐다. 행사차 방문한 카이로 외곽의 모까탐 지역에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 것. 거대한 쓰레기 더미에서 인기척을 느껴 치워 보니 여러 명의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집을 잃은 가난한 아이들은 쥐와 해충이 들끓고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 더미를 거처로 삼고 있었다. 고브란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이 그런 곳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돈이라곤 건물주 한 명당 한 달에 약 2이집트파운드, 한국 돈으로 360원에 불과했다. 여러 건물주들과 계약을 맺는다 하더라도 한 달에 2만∼3만 원 이상을 벌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모까탐 주민들 중 90%(약 2만 명)는 이집트 내 소수 종교인 콥트교 신자였다. 이들은 이슬람 인구가 90%에 달하는 이 나라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좋은 직장을 찾지도 못했고 정부 역시 이들의 열악한 삶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모까탐은 이집트 내에서 가장 버려진 지역이다. 전기가 끊기고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집이 대부분이다. 물론 위생 상태도 최악이다. 아이들도 교육을 받지 않고 어릴 때부터 쓰레기 분리 일만 해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고브란은 모까탐을 다녀온 이후 다시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가난과 더러움에 절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며 그들을 돕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안정적인 교수 자리까지 내놓고 자선단체 설립에 나섰다.
○ 교수 자리 내놓고 구호활동 투신
자원봉사자 4명과 아이들에게 옷과 먹을 것을 나눠주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하는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24년째. 현재 ‘스데반의 아이들’은 매년 이집트 내 2만7000여 가구를 지원하고 1만400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최대 자선단체 기구로 성장했다. 이집트 내 슬럼가에서 80개의 의료 시설을 통해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는 빈민들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며 5개의 직업훈련학교와 80개의 교육센터도 열었다.
교육센터에서는 학비가 없거나 콥트교 신자여서 일반 학교로부터 배척받아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읽기, 쓰기뿐 아니라 심리 상담까지 해주고 직업 훈련도 시킨다. 그리고 65개의 캠프를 마련해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숙소를 제공한다. 고브란은 콥트교 아이들뿐 아니라 이슬람교 아이들까지도 껴안았다. 이슬람 극단주의 운동이 가난한 아이들을 자양분 삼아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고 생각해 과감하게 종교의 틀을 넘어버린 것이다.
○ 자선단체 세워 매년 2만7000가구 지원
고브란은 2011년 시카고의 윌로 크리크 교회에서 열린 글로벌 리더십 서밋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신의 은총으로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럼으로 인해 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곳은 정할 수 없지만 선하게 살지, 악하게 살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되세요.”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