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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장애인이 12년 무사고? 편견-동정은 버리고 타세요”… 나는 서울의 택시운전사

입력 | 2012-10-25 03:00:00

3급 지체장애 개인택시 기사가 말하는 ‘한국사회 진짜 장애’




언제쯤 편견을 넘어설 수 있을까. 22일 밤 지체장애 3급 택시운전사 김현석 씨가 야간 운행을 하고 있다. 12년 무사고 베테랑 운전사인 그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승객들로부터 무례한 행동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며 가슴 아파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 택시 승객은 다짜고짜 문을 열고 내렸다. 요금도 내지 않은 채. 그러고는 뒤에 오던 택시를 다시 잡아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멍 하니 손님이 떠난 자리를 지켜보던 지체장애 3급 택시운전사는 혼잣말로 “괜찮아, 저런 손님만 있는 건 아니잖아”를 몇 번 말한 뒤에야 다시 핸들을 잡았다. 》
잠시 후 다른 손님이 택시에 탔다. 이촌동으로 가자며 뒷좌석에 편안히 몸을 기댄 손님은 잠시 후 운전사의 모습을 보더니 잠이 깬 듯 벌떡 일어났다. 운전사의 고개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엄지손가락은 바짝 치켜세운 채였다. 팔은 곧게 뻗은 대나무처럼 뻣뻣했다. 시선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전방과 좌우 사이드미러 사이를 오갔다. 살짝 벌어진 운전사의 입은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바삐 움직이며 좌우를 살피는 운전사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손님은 슬쩍 보조석의 택시운전자격증을 봤다. ‘개인택시운전면허증’에 적힌 운전사의 이름은 ‘김현석’(가명).

김 씨도 신경이 쓰였다. ‘내 이름까지 살피는 걸 보니 이 양반도 내리려나….’

서울 중구 태평로를 거쳐 남대문로 서울역을 지날 즈음 교통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던 찰나였다. 택시는 부드럽게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 섰다. 심야시간대 속도 경쟁이라도 하듯 질주하던 택시들이 정지신호도 무시한 채 옆으로 지나쳐갔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택시는 다시 천천히 출발했다. 여느 심야택시와는 달리 부드러운 핸들링 덕분에 차로를 변경할 때도 몸이 쏠리지 않았다. 용산구 용산대로를 지나 이촌동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이 손님이 느낀 김 씨의 운전은 ‘안심+친절’이었다.

“제…제가 장애가 있긴 하지만, 운전에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일할 수 있, 있겠어요? 장애인 택시운전사도 전국에 수백 명일 정도로 꽤 많아요. 다들 운전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죠. 어때요, 올 때까지 괜찮으셨죠?”

장애 때문에 운전이 불편하지 않으냐는 이 손님의 질문에 김 씨는 더듬거렸지만 차분한 말투로 답하며 미소 지었다.

○ 마음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

올해 48세인 김 씨는 7세 때 앓은 소아마비로 3급 지체장애인이 됐다. 다리를 절고, 말도 어눌해졌다. 오른쪽 팔은 뻣뻣해져 대나무처럼 항상 곧게 펴져 있다. 팔꿈치를 조금이라도 구부리려면 밥 한 끼 먹은 힘을 다 쏟는 듯, 땀이 날 정도로 힘을 줘야 한다. 고개는 고정되지 않고 시계추처럼 항상 좌우로 갸우뚱거린다.

그의 신체적 장애는 취직에 큰 ‘장애’가 됐다. 노동일도 하고, 중소 공장에서 단순 조립하는 일도 해봤지만 그가 가진 장애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마음을 붙인 일이 택시운전이었다. 혼자서 일할 수 있고, 세상과 대화하는 느낌이 좋았다. 2000년 처음으로 택시 운전대를 잡은 김 씨의 모토는 ‘운전은 내 운명’이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2년이 지났다. ‘12년 무사고’의 베테랑 운전사 김 씨는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최근 개인택시를 마련했다.

아침 출근하기 전에는 불편한 몸이지만 직접 먼지를 털어내고 손님 좌석 틈 사이까지 닦아내려 애쓴다. 손님들이 느끼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따뜻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들이는 정성이다.

처음에는 그저 손님을 목적지까지 사고 없이 데려다주는 일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택시운전은 세상의 진짜 장애가 뭔지를 일깨워준 창(窓)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몇 년 전 태운 술 취한 손님은 그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다. 자신의 모습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손님은 갑자기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장애인이 무슨 운전이냐,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애꿎은 승객까지 끌어들이느냐. 그만두고 다른 일이나 찾아봐라”며 요금도 내지 않고 내리더니 다른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가슴에 휑하니 찬바람이 지나갔다.

두 달 전 밤에는 ‘이 손님을 마지막으로 집에 가야지’하는 마음에 젊은 남녀를 태웠다. 김포공항으로 가자는 말에 차를 몰던 도중, 갑자기 남자가 ‘에이 씨× 장애인이네. 다른 택시 타자’며 여자의 손을 잡고 그냥 내렸다. 역시 요금도 내지 않았다. 하루 17시간 동안 운전하면서도 천직이라는 마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다가도 이런 일을 겪으면 하루가, 아니 온몸이 완전히 부서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다.

김 씨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장애인 택시운전사들이 겪은 사연도 수없이 들었다. 그때마치 마치 자신이 겪은 것처럼 무서운 생각이 스친다. 다리가 불편해 목발을 짚어야 걸을 수 있는 또 다른 운전사에게 “목적지에 도착한 손님이 운전사가 쫓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요금이 3만 원가량 나왔는데도 그대로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내게도 혹시’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사람을 의심하면 안 된다’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말의 폭력만큼 두려운 것은 신체적 폭력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당한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는 “한 장애인 운전사는 술 취한 손님을 만나 두들겨 맞기까지 했어요. 손님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갑자기 시비를 걸고 얼굴부터 배까지 수십 차례 주먹으로 때렸다네요. 너무 아파서 한 달 넘게 쉬었다고 합디다”라며 몸서리를 쳤다.

장애인 택시운전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퍼지는 이런 폭력 사례는 김 씨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믿음도 조금은 무너지는 듯하다. 언제든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7년 전부터 장애인 택시운전사를 지속적으로 고용해온 서울 중랑구의 덕수콜택시 이현순 상무의 말에 따르면 장애인 택시운전사들은 요금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고객과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손님들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 회사는 전체 170명의 운전사 중 56명이 장애인이다. 요금 미납과 폭력은 주로 심야에 일어나기 때문에 장애인 운전사들을 야간근무조에 되도록이면 편성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김 씨는 친절한 손님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안다. 많은 손님이 김 씨의 장애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그의 운전실력 덕분. 그러나 욕설과 모욕에 익숙해진 김 씨는 늘 마음에 상처 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면서 ‘진짜 장애인’이 누군지를 깨닫는 지혜를 배워가고 있다.

○ 동정의 시선은 사양

 

택시운전사 자격을 취득하는 데는 ‘장애인 여부’를 묻는 규정이 없다. 운전면허 제1종 또는 제2종을 취득하고 나이가 20세 이상이며 운전적성 정밀검사 적합 판정을 받고 운전경력 1년 이상이라면 누구든 가능하다. 면허를 따는 과정에서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취득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손으로 속도를 조절하고 차를 세울 수 있을 만큼 자동차는 진보했다. 물론 김 씨는 이런 장치 없이도 능숙하게 운전하고 있긴 하다. 그는 “장애인을 위한 자동차 기술은 이렇게 발전했는데 손님들 마음은 그 정도로 성장하진 않네요”라며 웃었다

택시를 탄 손님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운전실력이 아닌, 그의 장애다. 얼마 전 태운 손님은 요금을 계산한 뒤 만 원짜리 지폐를 접어 손에 쥐여주면서 ‘점심값이라도 하라’고 했다. 그는 거절했다. 다른 택시운전사처럼 똑같이 안전하게 운전해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줬을 뿐인데 굳이 돈을 더 받을 필요가 없다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심한 말을 하거나 폭력을 휘둘러 장애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열의 아홉은 돈을 얹어준 사람처럼 ‘불쌍하다’는 시선을 보낸다. 이들은 대부분 ‘힘내라, 장애인인데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은근한 동정심을 표현한다.

그는 TV를 봐도, 신문을 봐도 장애인에 대한 시각은 ‘동정’이 대부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끔 세워놓고 보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는 유권자들이 ‘아, 가슴 찡하게 돕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동정표를 던져줄 만한 시혜성 사업만 줄지어 발표하는 정치인 모습이 나온다. 자립을 돕기보다는 일시적으로 ‘퍼주는’ 사업만 줄줄이 내놓는 정부의 모습은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느라 고생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장애인들이 힘들게 사는 모습, 가까스로 삶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안타까움을 유발하는 ‘리퀘스트’식 방송도 그는 불편하다. 성금도, 도움도 필요하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모든 장애인은 ‘불쌍하다’는 인식을 주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 ‘보호해야 하는 사회 부적응자’로 인식하는 현실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김 씨의 마음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장애가 없는 사람에 비해 느리고 서툴 뿐 운전도 하고 빵을 만드는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이런 능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한다는 것. 그는 스스로 삶을 개척해 왔지만 ‘사회가 너를 돕겠다’는 시혜의식을 보일 때 종종 마음이 쓰리다.

○ 어쨌든 나는 택시운전사

김 씨는 운전대를 잡기 전 매일같이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사람들이 나 같은 장애인을 비정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물론 이런 혼자만의 기도는 몇몇 손님 때문에 현실화되지 못하는 날이 많다. 그래도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자신을 대하는 손님들의 시선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미터기를 누르고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아직은 사람들의 ‘편견’을 다 바꾸기는 힘들다고 봐요. 사실 안전하고 직결된 문제니까 장애인이 운전하는 것을 두려워할 만도 해요. 하지만 저는 안전하게 운전해서 여러분을 잘 모셔다 드릴 수 있어요. 그 사실만 알아주시면 그만이죠 뭐. 어쨌거나 저는요, 12년 무사고 택시운전사라고요.”

그의 말과 함께 덕수콜택시 이 상무의 말이 오버랩됐다.

“우리 회사는 오래전부터 장애인을 운전사로 고용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운전사들끼리도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비장애인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더불어 산다는 말의 힘을 우리는 알죠. 운전사들이 회사에 들어와서 그날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똑같이 웃고 운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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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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